'생명의 말씀/선한목자설교'에 해당되는 글 2건

카톨릭은 왜 이단인가?

유일한 참 교회? 교황은 페트로의 후예? 

 

 

 
김삼 ssvc02@gmail.com

 

교회의 진리 전달력이 약화되면서 종교 문제로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나날이 늘어간다. 얼마전 필자에게 온 한 편지는 혼기가 찬 젊은 아들이 천주교 여성과 사귀는 데 대한 한 신자 어머니의 고민 내용이었다. 드물지 않은 사례들이다. 나름대로 해결하기란 수월치 않은 문제다.

이런 현상은 신교회가 카톨릭의 문제점에 대한 적절히 대처하지않고 있는 탓이다. 마치 한국이 친북 좌경 세력들에게 이렇다할 대처를 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진리의 바위 위에 굳건히 서있지 않고 모래 위에 선 교회들은 언젠가 무너질 날이 올 것이며 그 날은 결코 멀지 않다.


▲바티칸 교황청 산 피에트로 광장에 서있는 \'초대교황\' 페트로 상.     ⓒ 김삼 

대다수 이단비평가들은 한국의 소규모 이단들을 열렬히 비판하면서 정작 카톨릭에 대해선 입을 다무는 경우가 흔하다. 일부 기독교단체나 신학자/목회자들은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감히 함부로 카톨릭을 이단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카톨릭은 이단비평의 마지막 수순인지도 모른다.명심할 것은 카톨릭은 중세 종교개혁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를 '이단'시 한다는 사실이다. 적반하장 격이지만 말이다. 

오해 말라. 필자는 천주교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잘 아는 친지들도 있다. 여느 신자와 비신자의 영혼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영혼을 사랑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올바른 길로 이끌고 싶다. 필자가 이단시하는 대상은 비성서적인 바티칸 교황청과 카톨릭교회의 교리다. 약10억 된다는 세계 카톨릭 신도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이 교황청의 교리와 제도에 매인 노예들이나 다름없다. 

이단은 별 게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다른 방향이면 이단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그분의 이름에 버금가게 말씀을 높이셨다. 성경은 성령이 친히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시어 기록하신 것임을 우리는 믿는다. 더 나아가 예수 크리스토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에 추호라도, 파리똥 만큼이라도 가감하는 사람은 저주받아 마땅하다.

그렇다면 성경말씀을 있는 그대로 승복하기보다 자기 뜻대로 맘대로 '자유자재'로 가감해온 바티칸 신학자들과 역대 교황들도 저주 받아 마땅한 대상이다. 이건 필자자신의 생각과 말이 아니라 성경말씀 자체의 증언이다(계22:18,19). 할렐루야, 심판주 야훼 하나님과 재판장 예수 크리스토, 분별하시는 성령님께 영원히 영광!

카톨릭이 '이단'으로 규정받기엔 조건이 충분하다 못해 넘쳐날 정도다. 알고보면 카톨릭은 그 어느 기독교 계열 종파보다도 이단시비 여지가 있는 대표적 '문제집단'의 하나다.
그런데도 신교 일각에서, 특히 교계단체들이 카톨릭교회를 마치 험한 세상 길에 다정한 길벗이라도 되는 양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뭘까? 몇가지로 분석될 수 있다.

우선 카톨릭의 규모가 너무 크기에 단순하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기독교계의 어느 이단종파보다도 더 규모가 큰 집단이다. 그래서 "10억이나 되는 카톨릭이 다 이단일까? 그들은 구원받지 못할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차 논할 것이다.

둘째로 개신교가 카톨릭으로부터 그대로 물려받은 전통을 '공통요소'로 지닌다. 예를 들면 일부 예배의식의 유형, 사도신경, 사도신경/주기도의 의례적 사용, 물방울 세례, 어린이 세례, 일부 교파의 '사제' 제도 등이다. 또 성삼위일체 개념과 용언도 카톨릭과 공유한다. 그러기에 많은 교회들이 카톨릭과 '공통점'을 느끼는지 모른다.

셋째로 신교는 카톨릭에서 배태되어 갈려나온 존재로 자처하면서 카톨릭을 '모교회'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 하기야 마르틴 루터, 장 칼뱅 등이 본래 카톨릭 사제였다. 하지만 거듭난 사람들의 모임인 참된 하나님의 교회는 로마에서 배태돼 나온 게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왔다. 교회의 근원은 로마가 아닌 예루살렘임을 우린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예루살렘교회는 하늘에서 오신 성령으로 태동됐기에 교회의 뿌리는 하늘이지 로마가 아닌 것이다.

  카톨릭은 유일한 참 교회?

로마교황 보니파체 8세는 바티칸 칙서 'Unam Sanctam'(1302년)에서 "..하나의 거룩한 카톨릭, 사도적 교회가 있을 뿐..이 교회 밖엔 구원이나 죄의 보속이 없다.." 라며 "..구원을 위해서는 모든 인류가 절대로 로마교황에게 복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보니파체 자신이 교회의 머리 즉 크리스토가 된 셈이다. 카톨릭 유일주의의 이 기본원칙은 현재까지 변함 없다. 


▲교황 보니파체 8세 무덤 앞 석상.     ⓒ김삼 

자고로 지상의 제도적 교회가 "우리 교회밖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할 경우 이단이다. 바꿔말하면 "어떤 교회건 다른 교회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는 지상교회는 이단이다. 그런 이단이 어디 한둘인가. 구원이 있는 교회는 지상의 제도적 교회가 아니라 명실공히 크리스토를 머리로 하며 그의 몸된, 눈에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 교회 즉 거듭난 신자들의 연결체일 뿐이다.

바티칸 카톨릭은 제도적, 가시적 교회에 불과한데도 짐짓 우주에 단하나뿐인 공교회, 유일한 교회로 행세하기 때문에 이단이다. [카톨릭교회=거듭난 신자집단], [가시적 교회제도=비가시적 우주교회], [카톨릭교회=천국교회] 같은 주장은 카톨릭 신학자들과 교황들만 할 수 있는 황당한 헛소리고 망언중 망언이다! 

이런데도 교황에게 조아리며 아부하는 신복음주의자들은 "당신은 우리를 이단으로 보셔도 우리는 여전히 당신을 받드나이다"라며 제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고 있으니 어찌 통탄하지 않으랴! 마치 상어아가리로 머리를 들이밀며 "우리는 당신의 것이니 제발 잡숴주시옵소서" 하는 물고기들과 다름없는 것이다. 그것은 제대로 된 대응방식이 아니다. 상어(카톨릭신학)엔 범고래(말씀중심 신학)로 대처해야 한다.

   교황은 '페트로의 후예'?

카톨릭 교회는 페트로를 '초대교황'으로 받들어왔고 이를 빌미로 역대 교황을 페트로의 후예로 믿어왔다. 성경은 물론 교회사적으로도 증명되지 않는 헛소리다.
먼저 페트로가 바티칸의 주장처럼 과연 로마교회의 '감독'이었나 쉽게 알아보자. [이 부분은 헨리 헛슨, 데이빗 클라웃의 연구를 참조했음을 밝혀둔다. 성구엔 원어발음에 더 가까운 성경 각권 약호를 쓴다. 즉 '페a'은 페트로알파(베드로전서), '페b'는 페트로베타(베드로후서)를 뜻한다. 기타 이름도 이에 준한다. 그 이유는 필자의 딴 글들을 참조해주기 바란다.] 

성경엔 페트로가 로마에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로마서 16장 참조). 또 신약성경 전체에 로마교회의 특수성/우위성 따위를 내비친 구석이 단 한군데도 없고 로마에서 교황이 다스린다거나 '모교회'라고 한 부분이 눈 씻고 봐도 없다.


▲페트로를 \'초대 교황\'으로 묘사한 독일 \'뉘렘베르크 역대기\' 속 삽화.     ⓒ 김삼 

페트로의 첫 편지 페트로알파(벧전)는 로마가 아닌 바빌론에서 쓰여진 것이다(페a 5:13). 페트로 당시의 '바빌론'은 로마를 의미한다는 교황들의 주장은 정말 웃기면서도 딴엔 자가당착이랄까 의미있는 얘기다. 왜냐하면 사실 로마교회는 계시록의 음녀 바빌론에 종종 비유되기 때문이다.

   파울은 '로마의 페트로'를 언급한 적 없어

사도 파울은 당대 로마 신자들에게 편지(로마서)를 보내면서 페트로를 언급한 흔적조차 없다. 당시는 주후 58년쯤이다. 그는 로마에서 특별한 은사를 나누길 원했고(롬1:11) 거기서 말씀 전하기를 원했다(1:15). 그러면서 그곳 성도중 27명에게 일일이 문안한다. 그러나 페트로는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았다. 주후 61년 파울이 로마 죄수로 갇힌 중 몇몇 형제들을 만나지만 그 가운데 페트로는 없다.

이런 사실만 봐도 페트로는 로마 교황이나 로마교구의 감독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니 로마교구란 제도 자체도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파울이 돌보던 로마의 가정 교회만이 있었을 뿐이다.

로마에서 파울은 갈라티아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페트로에 관해 언급한다. 그러나 페트로가 로마에 있다거나 [바티칸 주장처럼] 그곳에서 20년간 교황 직위에 있던 페트로에 관한 언급이 아니다.
에페소/필리포/콜로사이/필레몬 등의 서신서는 모두 로마에서 기록된 것이다. 이 서신서에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언급되지만 페트로에 관한 언질은 단 한건(!)도 없다. 로마에서 파울이 보낸 마지막 서신서인 티모테 베타에서 파울은 "나의 첫 답변 때 아무도 나와 함께 하지 않고 오히려 모두 나를 버렸다"(티b 4:16)고 밝힌다. 만일 페트로가 로마감독이었다면 왜 파울과 함께 하지 않았겠는가? 만일 그가 있었는데도 딴 사람들처럼 파울을 버렸다면 그 엄청난 죄책을 어찌 면하겠는가!

순교 직전인 당시 파울은 이 편지(티모테 베타)에서 "오직 루카스(누가)만 나와 함께 있다"(티b 4:11)고 했지, "페트로도 나와 함께 있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페트로가 로마감독/교황이었을 수 있겠는가? 이것만 봐도 바티칸이 얼마나 거짓말덩어리인지 알수있다. 성경을 제멋대로 가감수정하는 것, 그것이 이단이다.

  페트로와 교황, 어느 쪽이 맞나?
-역대 교황들의 거짓


▲스승 크리스토께 \'열쇠\'를 받는 것으로 잘못 묘사된 카톨릭 그림. 주님은 \'초대 교황\' 페트로가 아닌 교회에 열쇠를 주셨다.     ⓒ 김삼 

페트로는 기혼자였다(마테오 8:14). 예수님과 모든 사도들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장모도 있었고 사역 때 아내를 대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대 교황들은 모두 미혼자/독신자다.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나? 특히 코린토알파(고전) 9:5은 카톨릭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다. 도무지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한번 잘 살펴보자.
"우리는 딴 사도들, 주님의 동생들, 케파(페트로)처럼 믿는 자매인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단 말이오?"(코a 9;5)
파울이 쓴 편지의 이 부분이 확실히 밝혀주는 바는 다음과 같다.

1. 사도들 다수가 결혼했다.
2. 주님의 동생들이 있었으며 그들도 결혼했다.
3. 케파도 아내가 있어 사역 시 대동했다. 

위 세가지중 그 어느 것에도 카톨릭은 해당되지 않는다. 카톨릭은 결혼하지 않은 사제/수녀들만이 일반 평신도보다 거룩하고 제대로 사목을 할 자격이 있고 권위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과는 반대다! 또 카톨릭은 주님의 친동생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마리아를 영원한 처녀/정녀로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리아가 '영원한 처녀'란 근거가 성경에 전혀전혀전혀(!) 없다는 것은 카톨릭 신도들에게 충격을 주는 놀라운 진리다.

이 구절 딱 하나만으로도 카톨릭이 얼마나 거짓된 종교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교황청은 자기네 나름의 '성서' 또는 '성서해석'이 절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바티칸 교황청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대상이다(계22:18,19). 성경을 맘대로 가감하니 말이다.
결혼한 페트로가 264명이라는 미혼자 교황들의 선배요 '초대 교황'이라니 얼마나 모순된 주장인가? 그러고도 페트로의 올바른 계승자/후계자/후예일 수 있는가? 카톨릭의 거짓은 여기서 그치질 않는다.

페트로는 성경은 확실히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것을 주목해야한다고 가르친다(페b 1:19~21). 그러나 교황들은 바티칸의 영감 없는 전통도 주목해야 한다고 보태어 주장한다.

페트로는 하나님의 백성을 상품화 하는 거짓교사들을 경계한다(페b 2:1~3). 그러나 교황들은 미사/기도/면죄부 등을 팔아먹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는 역사적으로 증명돼온 사실이다.

페트로는 침례/세례가 상징적일 뿐 성령과 예수 크리스토의 부활이 곁들여져야만 구원이 가능하다고 일러준다(페a 3:21. 이 구절의 한글번역은 개역이 제일 낫다). 그러나 교황들은 로마 카톨릭교회가 주는 세례(영세) 자체가 구원을 갖다주며 세례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페트로는 그에 대한 사람들의 숭상을 거부했다(행전 10:25,26). 그러나 역대 교황들은 천주교도들로부터는 물론 정치가/지도자들로부터의 영예/배례/키스/숭배를 기꺼이 수용하며 거의 신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페트로는 구원이 오로지 예수 크리스토의 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페b 1:1). 그러나 교황들은 구원엔 영성체(성체를 받음)도 필요하다고 곁들여 주장한다.

페트로는 교권제도와 함께 목회자들의 권위주의적 자세를 경고하고 양떼의 본이 될 것을 권고했다(페a 5:3. 이하 성구들 모두 페a 즉 베드로전서). 또 장로 외엔 어떤 교회직분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황들은 교권체계를 세우고 신약에 언급되지 않은 수많은 제도와 직책을 만들어냈다.

페트로는 신약시대의 유일한 사제(제사장)직은 예수 크리스토의 하늘 대사제직 뿐이라고 가르치며 모든 신자들의 영적/보편적 사제직을 말했다(2:5~9). 그러나 교황들은 성체를 나눠주도록 서품된 카톨릭만의 특수 사제제도를 보유했다고 주장한다.

페트로는 기초이자 바위이신 예수 크리스토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고 말한다(2:4~8). 그러나 교황들은 페트로가 곧 반석이요 교회의 기초라고 주장한다. 페트로 자신을 거짓말쟁이, 모순된 사람으로 내모는 격이다.

페트로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다고 가르친다(1:23). 그러나 교황들은 사람이 영세(세례받음)로 거듭난다고 주장한다.


▲상 피에트로 바실리카 안의 페트로 동상. 로마주신 주피터 상을 닮았다는 설이 있어왔다. 발은 키스로 닳아있다     ⓒ 김삼 

페트로는 크리스토께서 죄를 위해 한번 희생되셨다고 가르친다(3:18). 나무(십자가)위에서 자기 몸으로 우리 죄를 지셨다고 가르친다(2:24). 그러나 교황들은 매번 미사 때마다 크리스토께서 새로 희생되며 예수 크리스토와 그 십자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로마카톨릭교회와 영성체와 사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페트로는 신자가 산 소망과 하늘 유업을 지녔다고 가르친다(1:2~5). 그러나 교황들은 신자가 하늘나라에 제 집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페트로는 신자가 살인자/도둑/악행자와 남의 일 간여자가 되지 말라고 훈계한다(4:15). 역대 교황 대다수는 이 모든 죄를 골고루 저질렀다.

 

블로그 이미지

itworldkorea

IT korea가 세상(world)을 변화시킨다.

,


[청년부헌신예배] 진리의 파수꾼이 되라

 

 

 

제목 : 청년들이여, 진리의 파수꾼이 되라.

말씀 : 요일 2:12-17

어느 서양의 시인은 “젊은이를 나에게 보여다오. 나는 그 나라의 앞날을 점치리라”고 했습니다. 젊은이는 곧 그 나라의 미래이기에 젊은이를 보면 그 나라의 미래를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젊은이가 참된 진리안에서, 올바른 이상안에서 맑은 눈동자를 지니고, 뜨거운 정열에 불타고, 냉철한 이성과 근면 성실한 손을 갖게 될 때에 만이 우리의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는 소망이 있고 밝은 미래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청소년들이 타락의 도를 더해가고 있다는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게 됩니다. 좀 지나간 통계입니다만 지난 95년 4월에 법무부가 발표한 최근 5년간 소년 범죄 동향 파악 자료에 의하면 강도나 강도 살인, 강도 강간 등 흉악범죄를 저지른 사람 중 10대의 소년이 전체의 54.3%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매년 증가 일로에 있다고 하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물론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요한 원인중 하나는 현재의 10대 후반부터 30대 전후의 청소년들을 우리 기성 세대들이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지식적으로는 그들이 기성 세대들에 비하면 월등하게 우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엄청난 지식을 심어주기는 했지만 참된 인간이 되는 길은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하였다고 생각됩니다. 그저 어떻게 해서든지 편하고 약삭빠르게 돈 잘벌고 호의호식하며 사는 것이 최고라고 가르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러니 그런 세대가 남을 생각할리가 없습니다. 일하기를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그저 남의 등을 쳐먹든지, 사기를 치든지, 남을 밟고 일어서든지, 쉽게 돈벌어서 잘먹고 잘살면 그것이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인생의 길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가치있는 일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나와 네가 함께 잘살수 있는 길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1.하나님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청소년기의 특징은 지극히 정열적이면서 지식에 대한 많은 욕구를 갖고 있으며 또한 매우 이성적이라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래서 증명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으면 한사코 수용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에 대하여도 수학이나 과학의 문제처럼 증명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니 쉽사리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유년부, 아동부에서 열심히 교회에 다니던 어린이들이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 청년부에 올라갈수록 많은 수가 탈락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반드시 기억해야 될일이 있으니 그것은 곧 우리의 그 알량한 지혜나 경험으로는 하나님을 헤아려 알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밤하늘의 별들이 몇 개인지 세어 보려는 것보다도 더 어리석은 일입니다. 세상은 보이는 것만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닙니다. 증명될 수 있는 것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능력과 지혜와 경험은 한계가 있고 미약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시139:5-6)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마치 자기 손아귀에 있는 것처럼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져보려고 하고, 증명해 보려고 하고, 미신을 섬기듯 엉뚱하게 섬기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실족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우리가 진정한 삶의 지혜와 능력을 덧 입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바르게 알수 있습니까?

2.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려면 무엇보다도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말씀은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어두워진 인생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고 묵상할때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지혜를 얻게 되며,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둡고 왜곡된 세상속에서 올바른 분별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와 교회 안에서도 젊은이들이 무기력한 이유는 그들의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지 않고, 세상의 지식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3:15)고 하셨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3:16)고 하였습니다.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된다.”(딤후3:17)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사모할때에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되고, 그 말씀을 우리의 마음속에 둘 때에 올바른 분별력을 얻게 됩니다. 지혜를 얻게 됩니다. 선한 일을 행하게 됩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것은 본래는 선한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그것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지혜와 분별력이 없습니다. 사람은 늘 변합니다. 욕망이 끝이 없습니다.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상실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로 계속해서 부정부패 척결을 그렇게도 강조하고 그것을 퇴치하기 위하여 그렇게도 애를 썼건만 오늘 우리 사회속에는 곳곳에서 부정과 부패로 썩는 냄새가 가득차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정말 우리나라가 무너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마져도 생기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실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길은, 진실로 우리가 함께 마음놓고, 믿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그 말씀을 우리안에 온전히 거하게 하는 길 뿐입니다. 더구나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아직 분별력이 약하고, 인생의 경험이 부족하니 더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방황하고 때로는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범죄율이 적은 나라는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철저한 쉐마 교육을 실시합니다. 그들은 어떻게 세상에서 능력있게 지혜롭게 돈 잘벌고 잘먹고 잘 살수 있는 가를 먼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인생의 지혜와 선악을 분별하는 말씀 교육을 먼저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새겨져 평생 떠나지 않도록 함으로써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중의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 안에 가득차게 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속에 인생의 등불인 말씀이 꺼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진리안에 거할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의 유혹을 벗어 날수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하지 않게 됩니다.

3.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인간다운 삶을 살려면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은 세상은 악한 것이므로 세상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상종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세상이란 하나님과 반대되며 거역하는 모든 세력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거기에 우리의 삶의 목표를 두고, 거기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거부하며 대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철저하게 대적을 받았습니다. 물론 세상 그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귀는 범죄한 인류를 조종하면서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본질적인 것을 떠나서 쾌락속으로 사람들을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저 육신의 감각적인 것을 충족시키기에 혈안이 되도록 조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나가면 죄된 본성을 지닌 인간들을 매력있게 유혹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온갖 향락의 문화가 청소년 꾀어 내고 있습니다. 마귀는 심지어는 우리가 보기에는 건전한 운동이나 예술이나 오락을 통해서도 우리들 인간을 파멸의 길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신을 온통 그것들에게 빼앗기게 함으로써 교묘하게 하나님과의 거리를 점점 멀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왜냐하면 세상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지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고 했습니다. 왜 이겠습니까?

먼저는 세상이 육신의 정욕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속에서 일어나는 죄악된 욕심입니다. 육신에 대한 탐욕, 사치, 쾌락, 성욕, 물욕등 하나님을 잊게 하고 이웃을 생각지 않게 하는 모든 행위입니다. 그 다음에는 안목의 정욕입니다. 보는 것마다 갖고 싶고, 누리고 싶고, 먹고 싶은 욕망입니다. 이러한 욕망은 계속해서 강도를 높여가기 때문에 여기에 걸려들면 헤어 날수가 없습니다. 또한 이생의 자랑때문입니다. 곧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의 영광을 생각하고 자기자랑, 자식 자랑, 남편 자랑 등을 통하여 은근히 자기 자신이 높임을 받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래서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수 없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두번째 이유는 세상의 것은 모두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7).

세상이 아무리 매혹적이요, 수지맞는 것 같아도 거기에 소망을 두면 실망합니다. 세상의 새것은 곧 낡아집니다. 젊음도 곧 사라집니다. 아무리 값비싼 금은보화나 대궐같은 집도 세상을 떠나는 날에는 흙먼지보다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솔로몬은 자기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해봤다고 스스로 말할수 있을 만큼 모든 것을 누려보고 가져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세월이지나자 그 모든 것은 빛 바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은 이와같이 안개와도 같이 바람과도 같이 사라져 버릴 것이기에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해야 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4.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천국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세상도, 영광도, 명예도, 쾌락도 다 지나가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은 영원히 거하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은 자요, 영생을 소유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젊은이의 자본은 꿈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짧은 과거와 긴 미래를 가진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배제한 미래는 암울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그의 영원한 미래는 말할것도 없으려니와 현실속에서도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빛을 잃어버리고 어둠속에서 방황하는 인생이 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설령 많은 지식을 얻는다 해도, 설령 많은 부귀를 차지한다해도, 설령 큰 명예를 얻는다해도 그것들이 우리 인생의 진정한 위로자가 되어질수는 없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을 것”(벧전1:24-25)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세계는 넓은 바다에 수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지식과 정보와 문화가 산더미처럼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대처하지 않으면 세상이라고 하는 파도에 밀려 침몰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나라의 장래는 바로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만약 당신들이 세상이라고 하는 파도속에 침몰되어 버릴때에 당신들은 물론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교회와 우리의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말씀안에서 진리를 지키고, 여러분들이 참된 인생의 본분을 다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정말 소망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영적으로 무기력할 때 우리 사회는 붕괴 되어지고 말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험한 세상에서 당신들 자신을 스스로 자신을 지킬 때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들이 이 혼돈된 세상속에서, 이 가치관이 상실되어 가는 사회속에서 진정한 크리스찬으로서, 진리의 파수꾼의 역할을 다할 때입니다. 그것이 당신들 자신을 살리는 길이며, 내 가정과 이웃과 교회와 이 사회를 살리는 길입니다.

 


블로그 이미지

itworldkorea

IT korea가 세상(world)을 변화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