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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부활의 진리와 부활의 기쁨

 

 


  성경 ; 시118:14-25, 고전15:1-11, 요20:1-18
  제목 ;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은?
 
    할렐루야, 부활의 영광과 기쁨이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성도 여러분에
게 언제나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번 부활절을 맞이해서, 저와 여
러분이 부활의 진리를 좀 더 깊이 깨닫고 확실하게 믿음으로써, 지금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부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주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우리가 전파한
복음도 헛되며 여러분의 믿음도 헛될 것이다(고전15:14)’라고 했습니다. 바울
은 다시금 강조하기를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여러분의 믿음도
헛되고, 여러분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
들도 망했을 것이다(고전15:17)’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만일 기독교
인이 된다는 것이 지금 이 세상에서만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피
조물 중에서 가장 비참한 존재일 것이다(고전15:19)’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확실하
게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분명하게 믿을 경우, 믿음생활을
온전하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지 아니 믿는지 알 수가 없는, 그처럼
흐릿하고 불분명한 신앙이 아니라, 그야말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확
실한 믿음을 갖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부활신앙은 살아있는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새롭게 변화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죽은 나무는 날이 갈수록 썩어문드러지
지만, 살아있는 나무는 날이 갈수록 무럭무럭 성장하고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
을 보여줍니다. 마찬가지로,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은, 날이 갈수록 그 믿음이
더욱 성장하고, 그 생활하는 모습이 날마다 새롭게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습
니다.
    그리고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은 밝은 소망을 갖고 살아갑니다. 지금 사는
것이 많이 고달프고 괴로울지라도 밝은 미래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습니다. 예
수께서는 그 누구도 이겨내지 못한 죄와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부활을 승
리를 거두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하신 그 예수를 믿는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결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절대로
굴복하지 않고 기어코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다 동원하여 그를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반드시 승리하도록 자비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몇 해 전, 조선일보 인터넷 판에는 ‘두 손이 없는 소금장수, 강경환 씨의
장엄한 인생’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
습니다.
    해마다 명절이 되면, 충남 서산 일대에 사는 독거노인들 집 앞에는 맑은
천일염 30킬로그램들이 한 포대씩 놓여 있곤 했다는 것입니다. 13년째나 계속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지난해에 그 주인공을 알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강경환 씨입니다.
그런데, 그는 두 손이 없는 장애인입니다. 두 손이 없는 그가 염전을 운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7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기초생활수급자였습니다. 그야말로,
자기 앞가림하기도 바쁜 사람이 남을 돕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가 두 손을 잃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습니다. 해변에서 깡통
하나를 발견해서 갖고 놀다가 돌로 그 깡통을 두드려댔는데, 그 순간 그 깡통
이 터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깡통은 6․25 동란 때에 묻어놓은 대인지뢰였습
니다. 이때, 그는 그만 두 손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남 보기가 부끄러워서 중학교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3년 동안, 그
는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밥을 먹여주고, 소변까지 뉘
어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자, 어머니가 외갓집에
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다가 너무나 배가 고픈
나머지, 그가 스스로 수저질을 해서 밥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소변보는 일도
스스로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모든 것이 다 귀찮고 힘들어서 농약 먹을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누군가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
았습니다. 그 대신에, 그는 주막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술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밤 12시에 퇴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술을 먹고 집에 왔는데, 책상에 유인물이 하나 있
었습니다. 그는 무심코 그걸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그 유인물에는 팔 둘과 다
리 하나가 없는 ‘정근자’라는 사람이 교회에서 간증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
니다. 그는 그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그때, 그는 그 간증을 듣고 생각했습니다. ‘저런 사람도 사는데, 나는 그
절반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얼마든지 사람구실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는 그 정근자 씨에게 편지했습니다. “나도 당신처럼 잘 살 수 있는가”하고
말입니다. 답장이 즉시 왔습니다. “너도 나처럼 잘 살 수 있다”고.
    강경환 씨는 기자에게 “나에게 손이 있었다면, 나는 그 손으로 나쁜 짓을
하고 살았을 거 같다”고 말했습니다. “손이 없는 대신에 사랑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마음의 변화를 갖게 되었으며, 그 결과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정근자 씨로부터 편지를 받은 이후, 술을 끊고 일을 배우기 시작했습
니다. 삽질도 익혔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손목에 낫을 테이프로 감고서 낫질을
하면서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다니던 교회에서 배우자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친구가 그에게 염전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피눈물
나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농사짓는 삽보다 훨씬 더 무겁고 큰 삽을 두 손
없이 사용해야 했습니다. 정상인만큼 일하기 위해서, 그는 하루 2시간만 잠을
잤습니다.
    그 와중에, 그는 남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손을 잃어버
린 대신에 얻게 된 귀중한 사랑이기 때문에, 그는 그 사랑을 직접 이웃에게 실
천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소금 한 포대에 만 원을 받으면, 거기서
1000원을 떼어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자기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에게
소금을 나눠주었던 것입니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올해까지 14년째를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는 소록도에도 해마다 김장용 소금을 30포대씩 보냈다고 합니
다.
    그는 2001년에 시청에 자발적으로 가서 기초생활수급자 신분을 포기했습
니다. 그리고 그는 작지만 아파트도 하나 장만했습니다. 그는 또한 “나는 살
수 있는 길이 어느 정도 닦아졌으니까,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 주라”고 하
면서, 한 달에 6만원씩 받는 장애인 수당도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염전이 자기 것이 아니고 남의 염전을 소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사랑의 실천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가
사춘기 때에 손을 잃어버리고 청년시절까지 방황하다가 얻게 된 그 소중한 믿
음이 그로 하여금 계속 어려운 사람 돕는 일을 하게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강경환 씨는 지금 부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에, 그는 손만 잃
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의 생명까지 잃어버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살았으
나 죽은 자처럼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정근자 씨를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
를 믿게 됨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부활의 삶을 얼마나 제대로 살고 있는지요? 진정
부활의 진리를 바로 잘 깨닫고 그 진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아야 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두
손이 없는 강경환 씨보다는 좀 더 나은 생활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스스로 그 자신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부끄러워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겠지요. 쓸모없는 우리 인생을 존귀케 하
시려고 부활신앙을 허락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오늘 우
리는 지금보다 좀 더 성숙한 부활신앙을 갖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1.부활의 진리를 잘 깨닫고 그 진리를 기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고린도전서 15장 9절 이하에서 ‘나는 사도 중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나는 교회를 박해했던 인물이니, 사도라고 불
릴 자격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은 오
직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 덕분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보다 더 열
심히 일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가 그런 일을 하게 된 것은, 그 자신이 아
니라, 그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아무튼,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던 사람이었는데, 부활하신
예수를 뵙고 난 후에, 그는 부활예수를 증거하는 복음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
러니까, 예수님 편에서 볼 때에, 바울은 과거에 아무 쓸모가 없는 정도가 아니
라, 복음전도의 방해꾼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뵌 후에
는, 복음전도의 방해자가 아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새 인생을 살았던 것
입니다.

    프랑스 황제 루이 14세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
가다.' 라고 외치면서 베르사이유 궁전을 완성하고 프랑스의 권위를 세계만방
에 떨쳤던 아주 유명한 황제입니다.
    그러나 그는 가톨릭 교인으로서 기독교를 방해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
는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박해의 손을 뻗쳐 칙령 거역 죄로 ‘세오졸프’
라는 사람을 체포해서 파리 탑의 감옥에 감금했습니다.
    때마침, 부활절이 되어서 루이 14세는 황제의 복장을 갖추고 호화찬란한
부활절 행렬 대를 거느리고 파리 시가를 행진했습니다. 높은 감옥의 탑 위에서
이 행렬을 바라본 ‘세오졸프’는 하늘의 영감을 받아 부활절 찬송을 힘차게 부
르기 시작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예수 부활 승천하셨다. 세상사람 찬양하니, 천사 화답하도
다.’ 이렇게 찬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황제는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그 찬송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찬송 소리는 의기양양하게 행진하던 루이 14세
의 양심을 때렸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왕 중의 왕' 이 되신다는 사실이 그를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황제는 부활 축제 행렬을 멈추게 한 후에 감옥으로 들어가서 ‘세오졸프’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빌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석방해서 자
유인이 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시편 118편 15절에서, 시인은 ‘바르게 사는 사람들의 집집마다에서 들려
오는 저 소리, 기뻐서 소리 지르는 저 환호성을 들어보아라. 여호와께서 힘쓰
시어 엄청난 일, 곧 승리를 거두게 하셨다.’고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23절 이하
에서 ‘여호와께서 이루신 이 일, 그저 놀랍기만 하여라. 이 날은 여호와께서 승
리를 안겨주신 날, 다같이 기뻐하며 함께 잔치 벌이자!’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인류 최대의 적인 죄와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망과 기쁨을
안겨주셨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든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따를 경우, 새로
운 인생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우리 모두 부활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그 날, 이른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이 묻히신 무
덤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그 무덤에는 예수님의 시신은 사라지고 빈 무덤뿐
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무덤 안에
예수님이 입으셨던 고운 베옷만 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무덤 안으
로 들어가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그때까지도 예수
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으로 다시 돌아와서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울다가 몸을 굽혀서 무덤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때, 무덤 안에는
흰옷을 입은 천사 두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물었습니다.
“왜 울고 있느냐?” 마리아가 대답했습니다. “누가 내 주님을 모셔갔는데, 그분
을 어디다 모셔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 마리아는 그 등 뒤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
은 예수님이셨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가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물었습니다. “왜 울고 있느냐? 너는 누구를
찾느냐?”마리아가 예수님께 “당신이 그분을 옮겨가셨다면 어디다 모셨는지 알
려주십시오.”하고 말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마리아야!”하고 부르셨습니다. 그 순간, 마리아도 주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마리아는 얼떨결에 주님을 붙잡고 “선생님!”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를 계속 붙잡고 있지 마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
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이제 너는 내 형제들을 찾아가서 내가 하나님께 올라
간다고 말하라.”고 일러주셨습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만나 뵌 일과, 주님이 일러주신 말씀을 그들에게 그대로 전했습
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하나님께
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은,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어서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그를 살려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인간의 힘만으로는 절대로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우리가 모든 지혜와 능력을 다 동원해도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 인간을 감싸고 있기 때문입
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곧, 죽게 될 사람이 어찌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겠습
니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고 호화로운 집에서 살게 된다 할지라도 죽음
을 앞둔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진정 평안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사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
렇게나 살지만, 부활을 믿는 사람은 함부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활을 믿는 사람이라야 참으로 가치 있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
이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산 사
람이라야 천국에 들어가게 되어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감으로써, 오늘의
저와 여러분이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보답하면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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