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선교회 헌신예배설교 ] 주님의 포로
제목 : 주님의 포로
말씀 : 고후5:13~15
1.가장 좋은 것에 미쳐야 합니다.
어떤 일에 몰두하고 또 거기에 푹 빠진 것을 ‘미쳤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공부에 미쳐 공부만하다가 유능한 학자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노래에 미쳐서 밤낮없이 노래만 하다가 좋은 가수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축구에 미쳐서 밤낮 공만 차다가 유명한 축구선수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예수님께 미쳐서 세상의 것을 포기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악한 것에 미쳐 속된 말로 인생 조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도박과 마약에 미쳐 말 그대로 패가망신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향락과 술과 담배에 미쳐 자신과 가정을 망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때로는 악은 아니지만 뭔가에 잘못 미쳐서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건 주로 취미생활인데 취미생활은 바르게 잘하면 삶의 활력소가 되어 인생을 풍요롭게 하지만 잘못 미쳐 도에 지나치면 자신과 가족을 힘들게 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남자를 망하게 만드는 세가지 취미가 있다고 합니다. 그건 자동차와 오디오와 카메라인데 이런 것들은 물론 싼 것도 있지만 비싼 것은 몇 백만 몇천만원씩 가고 또 하나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 새로운 것,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찾다가 집안을 망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진에 미친 사람들은 보통 카메라도 몇 대씩 되고, 렌즈는 한 여나므개씩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보통 몇백만원씩 되고 몇천만원 되는 것도 많습니다. 심지어 삼각대하나에 몇백만원짜리도 있고, 그 밖에 스토르브며 스크린하며 액세서리도 몇 십 종류되는데 제가 조금 아는 어떤 사람도 카메라 장비가 근 1억에 가까운 분도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무엇인가에 미친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 그건 자기가 미친 그것에 돈과 시간과 정열을 쏟아 부으면서도 전혀 아깝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게 인생의 낙이고 기쁨이고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무엇에 미친 사람들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에게 미친 사람들입니다. 혹시 아직 예수님께 미치지 못했다면 이제부터는 예수님께 미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당연히 가장 큰 행복과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주는 것에 미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누가 혹은 무엇이 그것을 우리에게 주겠습니까? 예수님이 아닙니까? 물론 세상의 것들도 어느 정도 그런 것들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그런 것들은 금방 쇠하고 없어지고 썩어지고 떠날 것들이고 그나마 우리 곁에 있는 동안에도 참된 행복과 기쁨과 은혜를 줄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당연히 그런 보잘 것 없는 것에 미치지 말고 진정한 것, 참된 것, 영원한 것, 진짜 행복을 주는 것에 미쳐야 하지 않습니까?
요10:10절을 보겠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또 시16:11절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보십시오. 생명을 주시고 풍성하게 하신다. 기쁨이 충만하고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 그러면 여기에 빠지지 않고 다른 무엇에 빠지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세상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예수님께 미쳐서 예수님이 주시는 그 영원한 생명의 은총과 평안과 기쁨과 은혜와 위로와 소망을 마음껏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분문에는 이와 같이 예수님께 미쳐서 살았던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나타나 있습니다. 13절을 먼저 보겠습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이 바울에게 미쳤다고 비난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바울을 시기하는 거짓 선지자들이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바울이 자신의 모든 영광을 포기하고 그렇게 고난을 당하는 것이나 때로는 황홀경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환상을 보았다고 하고, 때로는 남다른 방언을 하고 하는 것을 보고 미쳤다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성령의 은혜에 취하고 예수님만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드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미쳤다고 합니다. 미쳐도 곱게 미치지 헛된 것에 미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건 자기들이 얼마나 죄와 무지 속에 있는지, 자기들이 얼마나 보잘것없고 허무한 것에 미쳐서 살아가는지 잘 몰라서 하는 소리지 실상은 예수님께 미친 사람이 진짜배기에 미친 사람입니다. 완전한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자유와 평안을 주는 진짜에 미친 가장 온전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3:8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 세상의 것을 똥으로 여겼다. 말 그대로 미친 것이지요.
그러면 왜 미쳤습니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해서... 고상하다는 것은 그냥 좀 인격적이 훌륭하다는 정도가 아니라 ‘능가하다, 탁월하다, 위에 있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것으로 세상의 모든 은총보다 천배 만배 억배 더 크고 놀랍고 엄청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것은 배설물처럼 보였고 그래서 거기에 미쳐 자기 인생을 바쳤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당연하지 않습니까? 세상에 그리스도를 앎으로 얻는 은혜와 축복과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다. 또 지식적으로도 세상의 무슨 지식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보다 크고 놀랍고 굉장한 것이 있겠습니까? 우주만물의 창조와 인간의 기원과 궁극적인 목적과 가치와 의미를 알려주는 이 지식보다 더 크고 고상하고 높은 지식이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의 무슨 과학이나 문명이나 지식이나 윤리도덕이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알려 줄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크고 위대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지식입니다. 우주와 인간의 근원을 알려주고, 영원한 생명과 기쁨과 은혜를 주는 지식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이 너무나 고상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자로서 세상의 정말 별 것 아닌 다른 어떤 것들에게 좌지우지되거나 그것을 바라보며 사는 어리석은 인생이 아니라 오직 믿음 가운데 주님의 말씀과 방법과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따라 살아갈 때에 그 가장 고상한 지식이 주는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주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미칠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주님의 놀라운 사랑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의 그 엄청나고 위대하고 아름답고 놀라운 사랑을 안다면,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그 엄청난 은혜를 안다면 어찌 주님을 미치도록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14절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다고 하였습니다. 강권이란 한마디로 ‘붙잡혔다, 포로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포로가 된 것은 어떤 강제적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 때문에 포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녀 간에도 죽도록 사랑하며 어떻게 됩니까? 사랑의 포로가 됩니다. 그래서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게 됩니다. 서울이나 부산이나 제주도나 오라하면 오고, 가라하면 갑니다. 이렇게 하라 그러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 그러면 저렇게 합니다. 꼼짝 못하고 끌려 다니는 것이지요.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무슨 강요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그리스도를 안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안다면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 오직 영광과 존귀와 찬양만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놀라운 권세를 가지신 예수께서 죄와 무지로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너무너무 사랑하여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만 해도 엄청난 희생을 치룬 것이지요.
그런데 거기다가 심지어 십자가에서 그 끔찍하고 처절한 고통 속에서 수치스럽고 비참하고 끔찍하고 저주받은 죽음을 죽으므로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엄청나고 놀라운 사랑을 받아 영원한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엄청난 사랑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런 주님을 알고 만난 사람이라면 어찌 주님의 사랑의 포로가 되어 주님과 동행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이 놀라운 사랑을 받은 자로서 그 사랑의 포로가 되어 주님이 오라하며 오고, 가라 하면 가고, 이렇게 하라고 하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고 하면 저렇게 하면서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말씀과 분부와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갈 때에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고 주님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사랑의 포로가 되면 헌신하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사랑하면 마땅히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서 자신을 바치게 됩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사랑한다면 마땅히 자신의 모든 물질과 시간과 정열을 바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그토록 자녀에게 모든 것을 쏟아 붓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주님께는 오죽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로 홀로 영원히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받으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영원한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처절한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건지셨는데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감사와 기쁨으로 헌신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 영광만을 받으실 주님께서 나같은 무지렁이를 찾아와 주셔서 만나 주시고 십자가의 처절한 죽음까지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사랑이 얼마나 큰지, 주님의 영광의 나라에 들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이 영광의 역사를 위하여 수고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안다면 어찌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오늘 15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이 말씀을 잘 보십시오. 여기에 보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을 살아있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지 않음으로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은 죽은 자들입니다. 물론 영적으로지요.
그러면 살아있는 자는 무엇입니까? 물론 근본적으로는 영원한 둘째 사망 즉 지옥에 처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 즉 영생복락을 누릴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도 거듭난 자라로서 새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을 말합니다. 즉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남으로 죄와 무지에 속한 옛자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예수님이 주시는 새로운 생명과 가치관과 목표와 방향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산자이므로 당연히 죄 가운데 머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의와 진리와 선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믿음과 선과 의와 거룩 가운데서 활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은총을 누리며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난 인생이요, 진정으로 살아있는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 믿고 새로운 존재가 되면 마땅히 주님을 위하여 살게 마련인 것입니다. 15절 후반부의 말씀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롬6:4절에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그와 함께 장사되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났다. 그러므로 새 생명가운데 행해야 한다. 이런 말씀이지요. 당연하잖아요? 옛 것은 죽고 거듭났습니다. 그러면 마땅히 새 삶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게 뭡니까? 거룩하고 성결한 삶입니다.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고 봉사하는 삶입니다. 그럴 때 물론 생명의 은총을 누리며 그 역사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세상의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완전히 선하시고 거룩하시고 영화로우시고 전능하시고 의로우신 예수님, 그래서 우리에게 영원히 생명과 기쁨과 은혜와 평강과 복을 주시는 예수님의 행복한 포로가 되어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온전한 생명과 기쁨과 평안과 복을 주시는 주님의 포로가 되었은즉 세상의 헛된 것으로 소망과 기쁨으로 삼지 말고, 오직 주님의 뜻을 살피며 주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모습을 닮아 거룩하고 진실하고 사랑의 모습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모든 것을 그저 자신의 육신만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거룩한 역사를 위하여 사용할 줄 아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며 주님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남선교회 회원들과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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