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운 주일 낮 예배 설교 평안을 누리는 인생

 

 

 

제목 : 샬롬(평안)을 누립시다

말씀 : 대하14:1~7


1.부정적인 에너지를 추방해야 합니다.

 

1995년 미국 정신의학회는 화병을 정식으로 신경정신질환의 일종으로 공인을 했습니다. 그들은 이 병을 소개하면서 유독 한국 사람들이 많이 앓는 신경정신 질환으로 한국민속증후군이라고 정의하며 병명을 우리말 그대로 ‘hwa-byung’이라고 영어로 표기하며 영어로는 ‘anger syndrome’(분노증후군)이라고 번역을 하며 분노를 지나치게 억제해서 생기는 병이라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화병이 생기면 가슴이 답답하거나 숨이 막히고, 가슴이나 목에 뭔가 응어리가 느껴집니다. 또한 두통이나 소화불량, 불면증, 식욕부진, 만성피로 등의 신체적 이상 증상이 나타나고, 또 정신적으로는 우울증이 생기거나 짜증을 잘 내고 작은 일에도 깜짝 깜짝 놀라는 등 불안과 초조속에 살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화병을 한문으로는 불 화(火)자에 질병 병(病)자를 씁니다. 즉 가슴 속에 속에 불덩어리 같은 게 들어 있는 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가슴속에서 뭔가 부정적인 뜨거운 기운이 끓어오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속에서 그 뜨거운 기운이 자신의 심령을 상하게 만들고 남에게 상처와 고통을 줄때가 많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가슴속에 뭔가 부정적으로 끓어 오르는 뜨거운 기운이 없어야 합니다. 이런 불이 마음속에 들어있으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말과 행동이 독하게 되기 쉽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나오기가 쉽고, 도전적이고 공격적으로 되기 쉽습니다. 또한 옆에 사람까지 그 부정적인 에너지가 전달되어 남까지도 부정적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 심령을 황폐하게 만들고 가족이나 이웃에게도 상처와 고통을 주어 삶을 파괴하기 쉬운 것입니다.

여러분, 약3:6절에 보면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마음속에 불이나 독이 들어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심령속에 들어있는 불을 꺼야 합니다. 독을 빼내야 합니다. 그래야 평안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불을 끌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마음의 불과 독을 다스리기 위하여 참선도 하고, 요가도 하고, 산에 가서 도를 닦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온전한 평안을 주지는 못합니다. 어떤 힘든 상황이 전개되면 곧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그러면 온전한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심령속에 온전히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나의 삶을 주님께 온전히 맡기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주님, 은혜의 주님, 평화의 주님, 위로의 주님, 능력의 주님께서 내 마음을 다스려 주셔서 불을 꺼주시고 부정적인 에너지를 물리쳐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온전한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하여 묵상해보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할 때에 우리 심령의 모든 어둠과 독과 화를 온전히 몰아내 주실 분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다시 한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심령속에 온전히 모셔들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 가운데 우리 안에 들어있는 모든 어둠과 불과 독을 물리치고 주님이 주시는 샬롬을 풍성히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미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심령속의 모든 불과 독을 제거하고 참 평안을 누리려면 오직 주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신수양이나 참선을 통해서 평안을 누리려하고 반대로 어떤 이들은 돈이나 명예나 권세나 이런 것을 통하여 평안을 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로는 결코 참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상황이 변하고 조건이 사라지면 사라지는 평안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상황과 환경을 초월하는 심지어는 죽음앞에서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미술대학교에서 평안을 주제로 그림경시대회를 열었습니다. 학생들은 각기 자기 실력을 뽐내며 자기가 생각하는 평안의 모습을 열심히 그렸습니다. 드디어 제한 시간이 지나 그림을 평가하는데 두 그림이 최종결선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 두 그림은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히 반대되는 분위기였습니다.

한 그림은 양 옆과 뒤쪽은 푸르고 아름다운 산에 둘러싸여 있고 앞에는 평평한 풀밭이 있는 호수가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호수앞 풀밭에는 온갖 종류의 들꽃이 만발해 있고, 그 옆에서는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잔잔한 호수가 의자에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 다정하게 담화를 나누고 있는 그야말로 평화가 넘쳐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하나의 그림은 정반대였습니다. 바다와 큰 바위 절벽이 있는 그림이었는데 사나운 바람이 일어나 엄청난 파도가 밀려와 절벽에 부딪쳐 큰 거품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얼마나 심한지 바위 절벽위의 나무가 부러져 바다에 떠다니는 등 얼핏 보기에는 평안과 반대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절벽 사이의 바위틈에 갈매기 둥지가 있는데 그 둥지 속에는 새끼들이 엄마 품에 안겨 평안히 쉬고 있었습니다. 둥지 밖에는 그렇게도 사나운 바람과 파도가 난리를 치고 있는데 이 새끼들은 엄마 날개 밑에서 조금도 두려움이나 걱정 없이 평안히 쉬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 그림이 최우수작으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첫째 그림은 평화롭기는 한데 그것은 다만 이상적인 세계일 뿐 세상에는 그런 평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그림은 세상이 비록 험하고 힘들어도 무언가 절대적인 것에 의지하면 모든 상황과 환경을 초월하여 평안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잘 나타내주는 그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는 바람 잘 날이 별로 없습니다. 조금 잔잔한가 싶다가도 언제 험한 바람과 풍랑이 일어나 평안을 빼앗아 갈지 모릅니다. 그래서 외적인 조건으로 평화를 누리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세상은 너무나 죄와 무지가운데 있고, 환경도 본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아름다운 모습에서 너무나 많이 변질되어 있고, 나 또한 부족하고 약하고 미련할 때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 평안을 누리려면 오직 모든 생명과 평강과 위로와 소망과 기쁨의 근원이신 주님께 나와야 합니다. 오직 모든 생명과 소망의 근원이신 예수님만이 참 생명과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어떤 것을 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품에 안겨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모든 상황과 환경을 이기고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말하는 평안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샬롬이고, 다른 하나는 솨카트입니다. 샤카트는 한마디로 전쟁이나 기근이나 질병이나 사고나 천재지변이 없이 외적으로 평화로운 상태를 말합니다. 반면에 샬롬은 외적으로 전쟁이나 기근이나 천재지변이 없는 것도 포함하지만 그보다는 내적으로 사랑과 은혜와 평안과 기쁨이 충만한 상태를 말합니다.

 

물론 외적으로 전쟁이나 질병이나 천재지변이 없는 상태인 솨카트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님과 동행하는 자에게 이런 평안도 주십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에도 나타나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아비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의 시대에 그의 땅이 십 년 동안 평안하니라.” ‘십년 동안 평안하니라.’ 여기에 나오는 평안이 솨카트 즉 전쟁이 없이 평화를 누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평화의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었습니까? 십년입니다. 오늘 다 읽지는 않았지만 9절에 보면 10년 후에 구스 나라가 백만대군과 병거 삼백대를 거느리고 침공해 옴으로써 이 평화는 산산 조각이 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솨카트 즉 외적인 평안의 한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솨카트는 환경과 상황과 조건에 좌지우지되는 온전치 못한 평안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한 평안을 누리려면 솨카트가 아닌 샬롬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상황이나 환경이 안정됨으로써 누리는 평안보다 내적으로 우리의 심령속의 모든 문제가 해결됨으로 누리는 평안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환경과 상황을 이기고 참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평안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그것은 물론 말할 것도 없이 모든 생명과 기쁨과 평강과 위로의 소망의 근원이신 예수님께 있습니다. 우리에게 두려움과 불안과 공포와 아픔과 고통을 가져다주는 마귀사탄의 역사를 완전히 제압할 수 있고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주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사탄을 쫓아내고 성난 파도를 잠재우시는 주님만이 우리의 심령속의 모든 어둠과 두려움과 분노와 원망과 불평을 쫓아내고 온전한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4:27절 상반절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보십시오. 내가 평안을 주겠다.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르다. 세상이 주는 것은 잠시잠깐 뿐이요, 환경에 지배를 받는 것이지만 내가 주는 평안은 영원하고 모든 상황과 환경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런 말씀이지요.

 

그러므로 여러분, 더욱 주님 앞에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능력을 덧입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심령 속의 모든 어두운 것들과 부정적이고 사나운 기운들을 쫓아냄으로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 완전한 평화의 상태인 샬롬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주님을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직 주님 안에서만 우리는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 안에 있는 이 참 평안은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이것도 대답은 간단합니다. 주님을 가까이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주님을 열심히 찾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분명히 주님 안에 있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고도 남는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로 그런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4절과 7절을 보십시오. 먼저 4절을 같이 읽습니다.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또 7절도 좀 길지만 같이 읽습니다. “아사가 일찍이 유다 사람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여기에 보면 세 번 반복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찾는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다라쉬(darash)인데 이 말은 ‘자주가다, 찾다, 구하다, 문의하다, 노력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늘 하나님을 찾아가서 구하고 묻기를 힘썼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길을 찾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은 것입니다. 정녕 어떻게 해야하는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찾고 구하며 주의 뜻을 따라 살기를 힘썼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게 되었고 그 뜻을 따라 살게 되었고, 그럴 때 주의 은총이 함께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그럴 때 주님 안에 있는 평강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옛날에 래리 넬슨이라는 유명한 골퍼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핸가 아주 중요한 경기를 하고 있는 데 경기가 너무 안풀려 성적이 매우 부진했습니다. 그러자 점점 마음이 불안하고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이때 그는 그 자리에 앉아 두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모습을 본 1,2등을 다투며 선두 그룹을 달리던 친구가 조롱하듯 말했습니다. “어이 이봐, 친구, 하나님께 우승 트로피라도 달라고 기도하는 건가?”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아닐세. 나는 우승 트로피가 내 머리 속에서 사라지게 해 달라고 기도했네.” 그는 이렇게 모든 욕심을 버리고 평안하게 게임에 임할 수 있도록 해달고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경기에 임하자 정말 마음이 평안해지고 안정적으로 게임을 하게 되었고, 그러자 공이 홀 속으로 얼마나 잘 빨려 들어가는지 결국 하위권을 맴돌던 그가 그 경기에서 우승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은 평강의 주님이십니다. 은혜의 주님이십니다.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성난 파도를 명령하여 잔잔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난 바람을 명령하여 잠재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심령속의 모든 두려움과 공포와 욕심과 독과 화를 제거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주님께 구하면 분명히 평안을 주십니다. 은혜를 주십니다. 기쁨을 주십니다.

오늘6절 상반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누가 평안을 주셨습니까? 또 7절 하반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누가 평안을 주셨습니까? 물론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런 평안을 언제 주셨습니까? 그것은 2~5절까지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2절에 보면 아사는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 의를 행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모든 우상들을 철저하게 배격하고 그런 것들을 깨트려 버리고, 찍어 버렸습니다. 동시에 그는 백성들이 철저하게 하나님을 찾게 하고 율례와 명령을 행하게 하였습니다. 심지어 열왕기상 15장에 보면 그는 어머니가 우상을 섬기자 태후의 위를 폐해버리고 근신하도록 하였습니다. 즉 아사왕이 오직 하나님을 찾으며 모든 우상들을 철저히 배격하고 오직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평화를 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한 사실은 주님 안에 생명이 있고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생명이 있고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고 소망이 있기에 분명히 주님과 동행하는 자들은 그런 놀라운 은총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약하고 허물이 많고 미련하고 무지하고 어리석지만 우리 주님은 모든 마귀 사탄의 역사를 결박하고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그 분안에는 그 어떤 어둠도 깃들 수 없습니다. 마귀 사탄이 역사할 수 없습니다. 어둠의 세력이 득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길은 분명합니다. 우리의 심령속의 모든 어둠과 독과 화를 이길 수 있는 길도 분명합니다. 세상의 모든 상황과 환경을 이길 수 있는 길도 분명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모든 생명과 기쁨과 평강의 원출처인 예수님을 심령속에 모셔들이면 우리 심령속의 모든 화와 독과 모든 어둠의 세력들은 물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상황과 환경을 이기게 됩니다. 그러면 참 샬롬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오늘 말씀을 분명히 기억하며 오직 생명과 평안와 위로와 기쁨과 소망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가까이하며 주님께 자신의 삶을 온전히 의탁하며 그 품안에 안겨 살아갈때에 주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 가운데 내 심령속의 모든 어두운 것들과 화와 독을 내 쫓아버리고 동시에 외부적으로 다가오는 모든 어려운 현실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이기고 샬롬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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