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예배 설교] 빚진 자


제목 : 빚 진자의 삶

말씀 : 롬1:11~14

1.로마교회를 향한 바울의 간절한 마음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면 로마교회를 향한 바울의 간절한 소망이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오늘 13절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보십시오. 지금 바울은 로마교회에 여러 번 가려고 애를 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길이 열리지 않아 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바울은 편지를 써서 로마교회에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실 로마교회는 바울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교회입니다. 그는 아직 로마에 가본적도 없어 그가 세운교회는 물론 아니었고, 기타 그가 파송한 다른 사람이 세운 교회도 아니었습니다. 로마교회는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에 로마에서 온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본국으로 돌아가 교회를 세우게 됨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로마교회는 사도 바울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교회였지만 그토록 간절한 마음으로 로마교회를 방문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왜 그토록 로마교회에 가기를 원했는지에 대해서는 뒤에 살펴보기로 하고 여러분, 바울이 사실 인간적으로는 자기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교회인 로마교회를 그토록 간절히 가기를 원했다는 사실을 통하여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건 다른 아니라 우리는 교회를 정말 소중히 여기고 감사해야 하고 그런 만큼 교회를 간절한 마음으로 찾고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당연하지 않습니까? 교회가 어떤 곳입니까? 주님의 몸입니다. 여러분, 엡1:23절을 보십시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교회는 주님의 몸으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 즉 예수님으로 충만한 곳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우리가 부족해서 교회가 주님으로 충만하지 못한 곳도 있지만 정상적인 교회라면 주님의 말씀과 은혜와 사랑과 주님의 생명으로 충만한 곳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자녀된 우리가 이 귀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 그러면 주님의 몸인 교회는 어떤 역할을 하는 곳입니까? 물론 세상에서 유일하게 천하보다 귀한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곳입니다. 예배와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통하여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 주고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위로와 소망을 주는 곳입니다. 그러니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살리고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주고 은혜와 위로와 소망을 주는 교회보다 더 귀하고 복되고 아름답고 감사한 공동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어찌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어찌 열심히 간절히 찾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몸으로써 천하보다 귀한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교회를 정말 사랑하고 귀히 여기며 감사와 기쁨으로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교회를 찾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자신이 주님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며, 주님의 몸된 교회가 더욱 든든히 세워짐으로 주님의 역사를 힘 있게 이루어 가는 우리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로마교회를 든든히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그토록 로마 교회에 가기를 원했던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일단은 물론 주님의 교회가 거기 세워 있었기 때문에 너무나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가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어떻게든지 주님의 몸된 교회가 더욱더 견고하게 세워져 주님의 역사를 더욱 힘있게 이루어가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그토록 로마교회에 가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11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여러분, 보십시오. 바울은 로마교회를 방문하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하면서 그 방문 목적을 밝히고 있는데 그게 뭐냐? 신령한 은혜를 나누어 주기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신령한 은혜를 나누어 주려고 하느냐, 성도들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목적은 교회를 견고케 하는 것이고, 신령한 은혜를 나누어는 주는 것은 로마 교회를 견고케 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성도나 교회는 믿음 위에 견고하게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교회가 물론 외형적으로 발전하고, 건물도 멋있게 지어지고, 프로그램이 좋고, 재미도 있고 해야 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믿음 위에 견고하게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외형적으로 멋있고 재미있고 그럴듯해도 믿음 위에 견고하게 서지 못하면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외형이 그럴듯해도 믿음 위에 굳게 서지 못하면 툭하면 넘어지고 시험에 빠지고 마귀 사탄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갑니다. 세상의 죄되고 왜곡되고 추한 가치관에 휩쓸려 다니고 환난과 핍박이 오면 금방 넘어지고 쓰러지고 자빠집니다. 또 조금만 힘들고 일이 안 풀려도 걱정과 염려와 원망과 불평가운데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생명의 은총을 누리며 세상에 빛을 비추기는커녕 자신도 초라하고 볼품없고 하나님의 영광도 가리는 불쌍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 위에 굳게 서면 상황은 완전히 역전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능력과 지혜로 세상의 모든 왜곡된 것들과 유혹과 핍박과 상황과 환경을 이기게 됩니다. 마귀사탄이 감히 장난치지 못하게 됩니다. 장난을 쳐도 그까짓 마귀사탄의 역사쯤이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넉넉히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까지 세상의 죄되고 왜곡되고 추한 세상의 풍조에 휘말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혹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주님의 권능으로 넉넉히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믿음 위에 굳게 서야 하는데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물론 다른 방법 없습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에 힘써야 합니다. 즉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늘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와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찬양할 때에 초대교회 성도들이 열흘 동안 전혀 기도에 힘쓸 때에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일어났던 것처럼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능력과 지혜와 은혜를 주셔서 그 어떤 상황과 환경과 유혹과 도전에도 흔들리지 않고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믿음 위에 굳게 서야 하고, 믿음 위에 굳게 서려면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통하여 신령한 은혜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면 신령한 은혜가 뭡니까? 앞에서 본 말씀에서는 은혜를 은사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은혜와 은사는 거의 같은 말씀입니다. 우리는 은사 그러면 무슨 예언을 하거나 병을 고치거나 기타 무슨 큰 기적을 행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은사는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로마교회에게 은사를 주겠다는 것은 무슨 큰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 있는 은혜의 충만함을 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걸 받아야 합니다. 즉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서신서마다 늘 말씀하는 것이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은혜가 뭡니까? 그건 뭐 어려운 거 아닙니다. 일단은 구원이 은혜입니다. 이건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은혜로 거저 주신 선물 중에 가장 크고 위대하고 중요하고 영광스러운 선물로 그야말로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완전히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누릴 수 있는 은혜중의 은혜요, 특권 중의 특권이요, 영광 중의 영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다른 은혜는 못받아도 이 은혜만은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열 일 제쳐 놓고 구원부터 받아 놓고 봐야 합니다. 세상에서 돈벌고 출세하고 영광을 누리고 그런 것들은 천천히 해도 됩니다. 솔직히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못 받으면 큰 일 납니다. 내일로 미뤄서도 안됩니다. 단 한순간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구원을 받은 다음에 받을 은혜가 있는데 그것이 오늘 사도바울이 말씀하신 은사인 것입니다.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믿음과 사랑과 은혜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마음껏 누리는 것입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더욱 사모하며 예배에 열심히 참여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 읽는 것입니다. 그럴 때 더욱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이 넘치는 가운데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복된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세상의 다른 어떤 것보다 먼저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다른 무엇을 얻으려고 하기 전에 먼저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열심히 모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먼저 여러분 자신이 세상의 다른 어떤 것들로 풍성해 지는 것보다 더 신령한 은혜로 풍성해 짐으로 세상의 모든 왜곡되고 거짓된 사상과 가치와 풍조나 시험이나 유혹이나 환난과 상황을 이기고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풍성한 은혜와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이 가득한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주님의 빚진 자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바울이 로마교회에 간절히 가기를 원했던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자신이 너무나 큰 복음의 빚을 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14절을 보겠습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여러분, 보십시오. 바울은 자신이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빚진 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헬라인은 문명인을 말합니다. 야만인은 물론 말 그대로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도 같은 의미입니다. 즉 바울은 세상에서 잘나고 똑똑하고 권세 있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보잘 것 없는 사람이든지 누구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부득불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사도 바울 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누구도 예외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빚으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몸과 생명 자체가 빚 아닙니까? 이걸 뭐 내가 무슨 대가를 치루고 받았습니까? 이 몸도 생명도 지혜도 능력도 다 공짜로 받았으니 빚 아닙니까? 이 빚만해도 수조원 아니 수십조도 넘을 겁니다. 수십조원 주면 우리 몸을 만들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이 귀한 몸을 거저 받은 것만해도 어마어마한 빚인데 그와는 비교도 안 되는 더 큰 빚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물론 복음의 빚입니다. 예수님이 나 대신 죽으셔서 영원한 지옥에서 영원한 천국으로 옮겨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수십조원이 아니라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빚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영원한 시간을 처절한 고통 가운데 살아야 했는데 반대로 영원토록 오직 영광과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 속에 살게 하셨으니 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빚입니까?

또 여러분, 그러한 본질적인 빚 말고도 우리는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 거의 계속 빚으로 가는 겁니다. 땅도 공짜, 태양도 공짜, 비도 공짜, 산소도 공짜, 바다도 공짜, 강도 공짜, 나무도 풀도 꽃도 다 공짜로 주어지지 않았습니까? 이 빚만 해도 하루에 수억씩 될 겁니다. 물론 사람에게도 늘 빚을 지며 살고 있지요. 부모님에게, 형제에게, 이웃에게... 뭐 따지자면 말 그대로 이루 형용할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엄청난 빚을 진 사람들로서 우리는 어찌 하든지 조금이라도 빚을 갚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죽도록 충성해도 억만분의 일도 못 갚겠지만 그러나 조금이라도 그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최선은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어찌하든지 주님의 놀라운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 중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고 시급하게 여기며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건 복음 전도입니다. 물론 우리가 주님의 놀라운 은총을 기억하여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지만 최우선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며 갚아야 할 빚은 복음의 빚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복음의 빚, 즉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아무 대가없이 당신의 그 고귀한 생명을 주신 이 일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몇 백억원을 공짜로 받아도 큰 빚일진대 하물며 온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그래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공짜로 주신 이 은혜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으며, 이 빚보다 더 큰 빚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사실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이 보다 더 중차대하고 시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준다해도 생명을 주지 못한다면 결과적으로는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늘 15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그래서 심지어 고전9:16절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여러분, 보십시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연하지요. 빚을 안 갚으면 감옥에 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너무나 어마어마한 빚을 진 사람으로서 그 빚을 갚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까지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썼던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화가 있을 것이 두려워서 그랬다는 말씀은 아니지요. 그만큼 복음전도는 우리에게 맡겨진 가장 큰 사명이요 의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빚으로 살고 있지만 특별히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새생명을 주시고, 또 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함으로 생명의 은총을 얻음으로 어마어마한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이라도 이 빚을 갚는 심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특별히 지금 사순절을 보내고 있는데 사순절은 주님께서 얼마나 큰 고난을 통하여 생명의 역사를 이루셨는지를 되새겨 보며 우리도 무언가 작은 일이라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주님의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가기를 힘쓰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집중전도도 실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말씀묵상하고 기도하는 일도 있습니다. 자신의 욕구를 부정하고 제한하는 일도 있습니다. 교회와 이웃을 섬기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전도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주님이 십자가에서 그 끔찍한 고난을 당하신 이유가 뭡니까? 영혼을 살리는 일이 아닙니까? 그것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아닙니까?

그러므로 한 영혼이라도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힘쓰는 일이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요, 그래서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물론 이 일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크고 귀하고 시급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가 얼마나 큰 빚을 진 사람들인가를 기억하며 뭔가 조금이라도 주님의 빚을 갚는 일에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일에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복음을 전하는 것은 조금이나마 복음의 빚을 갚는 일이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이요,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열심히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는 생명의 역사를 힘있게 이루어가는 가운데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덧입어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은혜와 능력과 기쁨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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