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

 

 

 


말씀 : 엡 3:14-19

제목 :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

 

1.선한 싸움에 승리해야 합니다.

 

어떤 어린 소녀가 큰 사고를 당하여 양쪽 다리를 심하게 다쳐 거의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여러 번의 수술과 물리치료를 받으면 회복될 것이라고 하여 이 소녀는 수술을 받고 물리 치료를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기를 몇 차례하는 동안 이 어린 소녀는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워 부모님에게 이제 그만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물론 허락할 리가 없었습니다. ‘얘야, 안된다. 힘들어도 참아야한다. 지금 잘 견뎌야 나중에 걸을 수도 있고, 그래야 생활하는데 힘들지 않단다.’하면서 달랬습니다. 그러자 어린 소녀는 ‘아버지, 아버지는 내가 다리를 못쓰면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나를 사랑해 주실 거잖아요? 그러니 저를 집으로 데려다 주세요.’하면서 애원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어린 딸을 안아주며 말했습니다. ‘그래, 나는 네가 다리를 못쓰게 되어도 아니 설령 네 온몸을 못쓰게 된다고 해도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그러나 내가 너를 그렇게 사랑하기 때문에 네가 이 고통의 시간들과 싸워 이겨서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성장하기를 바란단다. 왜냐하면 그래야 네 인생이 더 행복하고 풍요롭게 아름다워 질 것이기 때문이란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이 소녀는 일년여 동안의 긴 고통의 순간을 이겨내고 성한 몸으로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모두의 부모님도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아니 아예 바보가 된다고 할지라도, 또 심지어는 죄가운데 빠진다고 할지라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바로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비록 힘들지라도 우리가 어떤 고난이나 죄악과 싸워 이기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고난에 지거나 혹은 어떤 어둠의 세력에 억눌려 초라한 인생이 되기를 원치 않으시는 것입니다. 조금 힘들더라도 선한 싸움을 잘 싸워 더 아름답게, 더 거룩하게, 더 온전하게 성장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 안에 있는 은혜의 풍성함을 받아 누리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어떤 고난과 시험과 유혹이 오더라도 그것들과 맞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과 적당히 타협하고 양보하며 살아가는 것은 당장은 조금 편하고 쉬울지 모르지만 결국은 우리 영혼이 유린당하여 그런 것들에게 얽매이고 종노릇하며 결국 인간으로서의 참된 가치나 의미도, 주님 안에 있는 그 풍성한 생명과 자유와 평화과 기쁨과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세상의 고난과 시험과 유혹과 핍박과 죄악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맞서 싸울 때 비록 그 과정이 조금은 힘들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누려야 할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며 살다가 저 영원한 영광의 나라의 상급을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딤후4:7,8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결코 조금 힘들다고 세상의 죄와 유혹에 적당히 타협하며 양보하며 살아가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모든 죄의 유혹과 시험과 환난을 이기고 진정한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가 세상에서 다가오는 모든 고난과 유혹과 왜곡된 가치들과 맞서 싸워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 안에 온전한 선과 의와 진리와 사랑이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심령을 채울 때 하나님의 능력과 선과 의와 진리와 사랑으로서 세상의 모든 고난과 시험과 죄되고 왜곡된 것들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이기겠습니까? 무엇으로 모든 고난과 죄와 악을 이기겠습니까? 우리 힘으로 가능하겟습니까? 그것으로는 안됩니다. 우리는 강한 것 같지 심히 약한 존재입니다.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는 존재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 죄와 무지를 깨달아 알 수 있고 우리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19절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사도바울은 지금 하나님 앞에 간절히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는데 무엇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느냐하면 하나님 안에 있는 충만한 은혜로 가득 채워지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위하여 물질적인 부요함이나 세상의 명예나 세상적인 어떤 축복이나 건강이나 이런 것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함을 덧입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겠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간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고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누리게 하는 것은 세상의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 안에 있는 진리와 선과 은혜와 사랑 등의 선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선한 가치로 채워져 있지 않으면 죄와 어둠의 세력을 이길 수 없고 따라서 다른 것들 즉 돈이나 건강이나 명예나 지식이나 이런 것들이 아무리 풍성해도 진정한 생명의 은총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육신이라는 그릇 속에 무엇을 채우느냐가 우리의 삶을 결정합니다. 하나님이 들어있으면 하나님의 사람이요, 마귀가 들어있으면 마귀의 사람입니다. 진리가 들어 있으면 진리의 사람이요, 거짓이 들어있으면 거짓말쟁이입니다. 사랑과 은혜로 가득차 있다면 은혜의 사람이요, 악과 거짓과 추함이 가득 들어 있으면 악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복된 마음이 가득차 있으면 축복의 사람이요, 원망과 미움과 저주가 가득 들어 있으면 저주의 사람이 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안에는 생명과 진리와 선과 의와 사랑과 축복과 은혜가 가득 들어있으므로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함을 받으면 우리는 모든 죄와 유혹과 어둠을 이기고 생명과 사랑과 진리와 은혜가운데 복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함을 받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온갖 충만한 것들로 자신을 채우는 것, 이것이 우리가 정말 은혜와 진리와 생명의 풍성함 가운데 살아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것들로 우리를 채우지 못하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어도 세상의 죄와 악과 어둠의 세력을 이기지 못하여 진정한 평안이나 행복이나 은혜를 누릴 수 없고, 나아가서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의 은총도 누리기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정말 무엇을 위하여 기도하십니까? 무엇을 위하여 힘쓰십니까? 여러분이 정말 복된 삶을 살려면 무엇을 먼저 채워야 합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물론 육신도 건강해야 합니다. 지식과 교양도 쌓아야 합니다. 세상적인 명예나 권력도 얻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먼저 인간이 되라고 하지 않습니까? 국회의원 판사 의사 목사가 되기 전에 하여튼 외형적으로 무언가 그럴듯한 무엇이 되기 전에 먼저 올바른 인성을 갖춘 인격체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진정한 인간이 되려면 올바른 인성을 가진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거기에다가 올바른 영성을 플러스해야 합니다. 아니 인성보다 영성이 먼저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인성만 좋으면 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것은 영혼이 죽은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올바른 영성과 인성과 지성과 감성을 갖춘 사람이 온전한 인생입니다. 이런 인생이라야 완전한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누려야 할 영적 육적 물적 지적 정적 모든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세상의 다른 어떤 것을 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믿음과 사랑과 은혜과 진리와 거룩과 의와 선과 지혜로 충만함을 덧입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올바른 영성과 이성을 가지고 주님과 동행할 때에 정말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와 능력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과 기쁨이 가득한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함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8,19절의 말씀에 나타나 있습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간단히 말씀드리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면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함을 받을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넓고 길고 크고 높고 깊은 것인가를 알면 우리는 분명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함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뜻입니까? 한마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한없이 크신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는 어떻습니까? 그것은 물론 모든 인류, 모든 우주 공간에 미치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길이는 어떻습니까? 그 길이는 무한대입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어지는 무한한 것이지요. 또 그 깊이는 어떻습니까? 그 사랑의 깊이는 바다 밑바닥까지, 지구 깊은 곳까지 모든 곳에 미치는 것입니다. 높이는 어떻습니까? 그 높이는 하늘 끝에까지 닿는 숭고하고 존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모든 시대, 모든 지역, 모든 인류에 미치는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알면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함을 덧입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 집니까? 그야 우리가 주님의 그 사랑을 알 때 우리는 그 앞에 엎드려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기억하며 엎드릴 때 하나님께서 무한한 은혜로 채워주시기 때문이지요.

 

여러분, 안 그렇습니까? 우리가 주님이 어떻게 우리는 사랑하셨는지를 안다면 어떻게 그 놀라운 사랑 앞에 감격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 그냥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형벌 가운데 차할 수 밖에 없는 죄인을 위하여 그 온갖 모욕과 멸시와 천대와 고통을 당하시고 마침내 처절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그 주님의 무한한 사랑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어찌 그 앞에 무릎 꿇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하나님 앞에 진정 겸손히 엎드려 그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여 영광과 찬양을 돌리고 말씀묵상할 때 어찌 주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않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그 앞에 엎드리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래서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알 때에 우리의 심령에 놀라운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감격의 눈물이 쏟아져 내리게 됩니다. 그 감격의 눈물과 함께 세상의 모든 원망 불평 짜증 미움 저주 불신 어두운 것 더러운 것 다 독기 시기 질투 이런 모든 찌꺼기들도 다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내 심령속에 천국이 도래하는 것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하늘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게 빛나고 하나님의 영광은 찬란하게 빛나는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와 기쁨과 능력과 사랑과 감사가 넘쳐흐르는 삶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아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느끼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말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죄인,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이 죄인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건져주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더욱 주님 앞에 엎드릴 때 더욱 은혜의 충만함을 입어 우리 가운에 남아 있는 모든 찌끼 같은 것들을 다 쏟아내 버리고 주님안에 있는 놀라운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마음껏 누리는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예수님을 온전히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와같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야 하겠는데 어떻게 그 놀라운 사람을 진정으로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오늘 17,18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라고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한 마디로 그리스도를 마음에 온전히 모심으로 하나님도 그리스도도 그리고 그의 사랑도 올바르게 안다는 것입니다. 뭐 당연한 거지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사랑 자체이신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실 때 비로소 우리의 어둠과 무지는 물러가게 됩니다. 사단은 결박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갖게 되고, 생명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당연한 일 아닙니까? 우리 속에 빛과 진리와 생명과 사랑의 영이 들어오면 우리 안에 도사리고 사탄의 영이 쫓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죄와 어둠의 그림자도 쫓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속사람이 바뀌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게 하시고, 따르게 하시고, 생명가운데 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심령속에 온전히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까짓 알량한 내 고집, 생각, 이성, 가치관, 주장, 경험들을 버리고 예수님을 온전히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께서 나를 완전히 주장하게 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나의 삶에 완전한 완전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시니까 빛이시니까 은혜이시니까 능력이시니까 우리는 능력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것입니다. 어떤 유혹과 핍박이 와도 끄떡없이 서서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까짓 세상의 것들에 연연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물결따라 이리저리 휩쓸려다니지 않게 됩니다. 내 작은 생각과 가치관과 의지를 따라 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밝은 눈으로 세상을 보며 올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모든 약하고 추하고 왜곡된 것들을 이기고 생명력이 넘치고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승리의 사람, 능력의 사람, 은혜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돈도 명예도 권력도 지식도 건강도 좋지만 그보다 앞서 여러분의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정말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예수님을 온전히 모셔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앞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안에 있는 그 생명과 사랑과 진리와 선과 의와 빛과 기쁨과 평강와 위로와 소망 등의 온갖 좋은 것들로 여러분의 심령이 가득채움 받아서 진정 세상의 모든 약한 것과 어두운 것과 힘든 것과 죄의 유혹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이기고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마음껏 누리는 복된 삶이 되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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