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
제목 :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
말씀 : 눅18:9-14
1.내가 먼저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1861년부터 65년까지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이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북부지역은 공업이 발달하여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지만 남쪽에는 농없이 주업으로 노예제도가 존속되고 있었습니다. 이때 링컨 대통령은 노예해방을 천명하자 이에 반발한 남부 사람들이 연방에서 탈퇴하고 별도의 대통령을 뽑으면서 남북전쟁이 시작되어 4년간의 치열한 접전 끝에 결국 링컨이 이끄는 북군이 승리하여 노예제도가 폐지되고, 민주정치를 이루는데 크게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4년간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동안 웃지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군이나 북군이나 모두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북군에 속한 교회의 목사님들과 교인들은 하나님이 우리 편에 되어 주셔서 북군이 이기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또한 남군에 속한 교회는 교회대로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셔서 남군이 이기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얼마나 난감하셨겠습니까? 양쪽 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며 싸우며 죽고 죽이고 하면서 서로 내 편이 되어 달라고 하니 하나님이 어느 편에 서야 하겠습니까? 이때 링컨 대통령이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 편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전에 먼저 정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고 그 뜻대로 행하고 그 뜻대로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점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정말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편을 들어달라고 하기 전에 나는 정말 하나님 편에 서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편에서 생활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서 복을 달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는 별로 하나님 편에 있지 않으면서 다른 교인이나 교회의 잘못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은 교회의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교회가 하는 일들에 대하여 비판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은 그다지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누구 때문에 교회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정녕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교인들과 교회의 잘못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 편에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교회가 하는 일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얼마나 열심히 교회를 섬겼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인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우리 주님은 사랑의 주님이라서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함에도 우리를 찾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먼저 찾아오셨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요,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고 다 은혜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이 찾아오실 때에 주님을 진정으로 영접해야 하고, 영접하였으면 주님의 그 놀라운 사랑과 은혜에 응답하여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과의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그렇게 주님과의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질 때에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충만하게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요14:21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말씀그대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라야 진정 주님을 사랑하는 자요, 또한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께도 사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은혜를 달라고 하기 전에 주님이 우리를 그 놀라운 부르심과 사랑에 응답하여 주님 말씀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교회나 성도나 기타 다른 사람들의 잘못에 대하여 비난하기 전에 먼저 내 스스로가 주님편에서 말씀대로 살아가며 그래서 사랑과 긍휼을 베풀고 교회도 열심히 섬겨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은혜를 충만히 누리며 주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의 그 놀라우신 사랑과 은총을 세상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복된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우리가 주님의 편이 되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2.교회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주님편이 되어 주님과 동행하려면 주님의 몸된 교회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오늘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과 세리, 이 두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보세요. 어디에 갔습니까? 성전에 갔습니다. 왜 갔습니까? 기도하러 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리새인은 교만하고 자신의 의를 내세우는 기도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물리침을 당하고, 겸손히 자신의 죄와 허물을 고백하는 기도를 드림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고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가 주님의 편이 되기 위해서는 주님의 몸인 교회를 가까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말씀듣고, 찬양하는 것이 내가 주님의 편에 서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증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당연하지 않습니까? 교회가 뭡니까?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엡1:23절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교회는 주님의 몸이고,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 즉 예수님으로 충만한 곳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뭡니까? 물론 주님의 자녀이며 동시에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입니다. 고전12:27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우리가 주님의 몸의 지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교회는 주님의 몸이고 우리는 그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인데 지체인 우리가 어떻게 몸된 교회를 떠나서 존재할 수 있습니까? 또한 교회는 주님으로 충만한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지상 교회가 온전치는 못하지만 그래도 지상에서는 주님으로 가장 충만한 곳이 교회밖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주님으로 충만한 교회를 가까이하지 않고 어떻게 우리가 주님 편에 설 수가 있겠습니까?
요15:5절을 보십시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보십시오. 주님은 포도나무 원줄기이고 우리는 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기 붙어 있어야만 생명을 부지할 수 있고 나아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교회는 주님의 몸이고 우리는 그 지체입니다. 주님은 포도나무 원줄기이고 우리는 그 가지입니다. 또한 교회는 주님으로 충만한 곳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떠나 어떻게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까?
어떤 분은 꼭 교회에 다녀야 신앙생활하나? 혼자하면 되지. 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분은 교회를 안다니며 나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이런 생각은 100%틀린 생각입니다. 교회를 떠나서는 절대로 신앙생활 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멀리하는 사람치고 신앙생활 제대로 하는 사람 없습니다.
물론 정말 교회에 가기를 간절히 원하는데 도저히 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문제가 다릅니다. 그러나 얼마든지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지 않는 사람은 무슨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고, 나아가 신앙생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어떻게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인 우리가 몸된 교회를 뗘나서 신앙생활을 한단 말입니까? 어떻게 주님으로 충만한 교회를 떠나서 은혜충만한 신앙생활을 한단 말입니까?
여러분, 부모님을 멀리하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허물이나 들추고 다니면서 부모님을 공경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남편과 아내가 서로 멀리하고, 대화도 하지 않고, 요구를 거부하고, 헐뜯고 비방하며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모이기를 힘쓰라, 주일을 성수하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하셨는데 그러한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살면서 하나님 편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로 하나님 편에 서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공경한다면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한다면 교회와 성도들을 비난하고 비평하기 전에 내가 먼저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앞장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를 원하신다면 열심히 교회에 나아와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말씀듣고 찬양하는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덧입어 생명의 풍성한 은혜가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죄를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편이 되기 위하여 기억해야 할 두 번째는 주님 앞에 자신의 죄와 무지와 연약함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런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데 먼저 11,12절에 보면 바리새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토색과 불의와 간음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 드렸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사실 감사한 것 아닙니까? 못된 짓 안하고 금식하고 십일조 생활하고 얼마나 그럴듯한 삶입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받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한마디로 바리새인의 기도는 자기 의를 내세우며 남을 정죄하고 무시하는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릅니다. 나는 이 세리와 같지 않습니다. 즉 옆에서 기도하고 있는 세리를 지칭하며 나는 저 나쁜 사람, 저 죄인과 같지 않기 때문에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즉 이 사람은 교만하고 무지하고 남을 정죄하고 무시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세리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습니까? 13절 보겠습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여러분 이 말씀을 잘 보세요. 세리는 ‘멀리 서서’ 기도하였습니다. 즉 자신의 죄와 무지를 생각할 때에 감히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 수가 없어 멀리 서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죄와 무지와 허물을 생각할 때 너무 죄스럽고 너무 송구스러워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가슴을 치며’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왜 가슴을 칩니까? 너무 슬프고 답답하여 가슴이 뻐개지는 것 같아서 가슴을 치는 것입니다. 이 세리가 자신의 죄와 무지와 허물을 생각할 때에 너무 마음이 답답하고 아파서 가슴을 치며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자신의 죄와 무지를 인하여 애통하며 회개하며 죄사함 은총을 간절히 탄원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 세리의 기도를 주셔서 그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편이 되기 위한 또 하나의 과정입니다. 먼저는 하나님 앞에 나와야 되고, 그 다음에는 겸손히 자신의 죄와 무지와 어리석음과 한계를 인정하고 회개하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5:4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진실로 자신의 죄와 무지와 허물과 미련한을 인식하고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긍휼을 구하는 자에게 주님의 은총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열심히 주님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나와서 진실로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부족합니다. 미련합니다. 주여 저를 용서하소서. 저를 긍휼히 여기소서. 저를 도와주소서하면서 주님의 긍휼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남의 죄나 허물이나 부족한 것을 보고 비난하고 헐뜯음으로 남의 가슴을 치게 만들지 말고 겸손히 자기 가슴을 치며 엎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온전힌 하나님 편에 서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축복과 은총을 더욱 충만히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겸손하게 엎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내 편이 되고 내가 하나님의 편이 되려면 자신의 죄와 무지와 허물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오늘 14절 하반절을 보세요.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다시 말씀드려 바리새인이 의롭다하심을 받지 못한 이유는 교만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외적으로는 바리새인이 세리보다 더 깨끗하고, 종교생활도 잘 했을지 모릅니다. 세리는 외적으로 바리새인보다 더 죄인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자기 죄는 말하지 않고 그 쥐꼬리만한 의를 내세웠습니다. 자신의 죄는 모른 채 세리를 경멸하고 멸시하고 조롱했습니다. 반면 세리는 비록 외적으로 허물이 많았지만 자신의 죄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감히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우러러 보지도 못했습니다. 겸손히 엎드려 긍휼히 여겨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를 받아 주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사회와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교만입니다. 인간이 과학이나 문화나 예술이나 지식이나 제법 뭐 좀 이루었다고 교만에 빠져 하나님까지도 제멋대로 판단하려고 합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자기 눈속에 들보가 있는 줄은 모르고 남의 눈의 티를 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남은 깔아 뭉기고 자신을 높이려고 합니다. 이런 행위는 첫째는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감히 하나님께 도전하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행위요 동시에 결국 인간 사이에 갈등과 아픔과 고통을 주는 미련한 행위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물리침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자신의 분수를 알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래서 시147:6절에서는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고 하셨습니다. 잠18:12에서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특별히 여러분, 오늘은 대강절 둘째주일입니다. 대강절이란 주님의 낮아지심과 사랑을 기억하며 그 주님이 우리 심령가운데 온전히 임하시도록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주님의 생명의 은총을 누리고 나아가 주님 안에 있는 그 생명과 사랑과 은총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이 대강절을 보내면서 저와 여러분은 더욱 겸손한 모습으로 주님과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내편이 되어달라고하기 전에 나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정말로 하나님 편이 되어 은혜가운데 살기를 원한다면 주님의 몸된 교회를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남의 허물과 죄를 말하기 전에 자신의 죄와 무지와 어리석음과 허물을 인정하고 자기 가슴을 치며 겸손하게 엎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와같이 여러분이 진정 하나님 편이 되고, 하나님이 여러분의 편이 되어 주실 때에 하나님안에 있는 그 놀라운 은총을 충만히 받아 누리고, 더 나아가 주님안에 있는 그 생명과 평강과 자유와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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