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예배설교] 풍성한 은혜의 인생

 

 

 

 

제목 : 만선(滿船) 인생

말씀 : 요21:1-6

 


1.깨달음과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중국의 고대문헌인 벽암록(碧巖錄)에 ?줄탁동기(?啄同機)?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 떠들 줄, 啄 쫄 탁, 同 같을 동, 機 기회 기자를 쓰는데 계란이 부화하여 병아리가 되어 나올 때를 비유하여 나온 말로 때를 알고 거기에 맞는 행동을 해야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병아리는 때가 되면 밖으로 나가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 껍질을 톡톡 두드려 어미 닭에게 껍질을 깨트려 달라고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줄(?)입니다. 그러면 어미 닭은 이 신호를 듣고 병아리가 나올 때가 되었으니 도와달라는 신호인 줄 깨닫고 거기에 응답해서 껍질을 톡톡 쪼아 깨트려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탁(啄)입니다.

이와같이 병아리는 병아리대로 어미닭은 어미 닭대로 깨닫고 행동하는 것이 같은 시기에 이루어져야하는데 이게 동기(同機同)입니다. 그러면 건강한 생명체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어느 한쪽이 깨닫지 못하거나 혹은 깨달아도 행동하지 않으면 안되고, 너무 늦게 행동하면 자칫하면 병아리는 밝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그 안에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원리는 비단 병아리가 부화될 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것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먼저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깨닫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깨닫기만하면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깨달아도 행동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행동하는 것도 시기가 있습니다. 뒤늦게 깨닫고 행동하고자 해도 때를 놓치면 일을 그르칠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깨달아야 하고 나아가 적절한 시기에 행동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의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이루어져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신앙생활도 다르지 않습니다. 줄탁동기가 필요합니다. 우선은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생명의 도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깨닫는 것만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깨달았으면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행동해야 합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면 생명의 은총을 누릴 수 없고, 또한 깨닫기는 깨달아도 거기에 상응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그 또한 생명의 은총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깨닫고 그 깨달음을 따라 행동할 때에 비로소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 진리의 도, 생명의 도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둠속에서 자기 생각대로 눈에 보이는 것만을 좇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뭔가 좀 알 것 같은 데 조금 지나면 그만 말씀의 의미를 다 까먹고 그저 자신의 생각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예수님이 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고 그 말씀대로 로마병정들에게 붙잡혀 고난을 당하시는 것을 보자 저분에게서는 기대할 것이 없다면서 다 떠나 버리고 말지 않았습니까?

심지어는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주님께서 그토록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썩지 않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말씀하셨지만 깨닫지 못하고 육신의 떡만을 생각하며, 육신의 떡을 걱정하며 주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래서 막8:17절에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어찌해서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그동안 그만큼 너희들과 함께 하며 너희에게 말한 것을 깨닫지 못하느냐? 그만큼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바람과 파도를 명령하여 잔잔케하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내가 생명의 주임을 너희에게 분명히 보여주었건만 아직도 깨닫지를 못하고 먹을 것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느냐고 하시면서 영적인 감각이 둔하여 깨닫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을 책망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선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나 사이에 줄탁동기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우리 심령의 문을 톡톡 두리면서 잽싸게 응답하여 그 말씀대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임으로 정말 주님과 주님의 뜻과 주님안에 있는 그 생명의 은총을 바르게 깨닫고 이해함으로 주님을 온전히 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먼저 주님을 바르게 알고, 나아가서는 그 아는 지식을 따라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삶이 하나 되고, 믿음과 행동이 하나 되고, 신앙과 삶이 조화를 이루저 진정한 생명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자기 생각대로 행동했을 때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안타깝게도 주님의 뜻을 바르게 깨닫지 못하고 자기마음대로 엉뚱한 일을 하다가 참혹한 실패를 당했던 제자들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오늘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그러니까 어부출신으로 갈릴리 바닷가에 잔뼈가 굵은 베드로를 비롯해서 다른 여러 명의 제자들이 갈릴리 바닷가로 나가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는데 피라미 한마디로 잡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신 후 여러번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뒤에 있었던 일입니다. 먼저 막달라 마리아게 나타나셨고,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며 문을 닫고 숨어 있는 방에 찾아오셔서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영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하자 나를 만져보라고 하셨습니다.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손의 못자국을 만져보고, 옆구리의 창자국에 손을 넣어보라고 하시며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당신의 부활이 얼마나 확실한 것인가를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지금 이 시간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주님께서 이들이 지금 무엇을 하기를 원하셨겠습니까? 두말할 나위도 없이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먼저 모든 제자들을 불러 모아 제자들부터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 했습니다. 부흥집회를 열든지 성경사경회를 하든지 간절히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의 능력을 받아야 했습니다. 열두제자 뿐 아니라 그동안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을 모아 그들에게 부활의 주님을 분명히 알려주고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들을 상기시켜 주며 이 분이 진정 메시아요, 생명의 주님이셨음을 선포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수제자격이었던 베드로가 먼저 고기 잡으러 가겠다고 하니까 다른 제자들도 따라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밤새도록 열심히 고기를 잡았으나 피라미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할 때에, 기도해야 할 때에, 주님의 말씀을 상기하고 사명을 감당해야 할 때에 엉뚱하게 고기를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물고기를 잡으며 생계를 유지하던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그 때 그 결과는 처참한 실패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안 잡혀도 그렇게 안 잡힐 수가 있는지 일부러 안 잡으려고 기를 쓰고 그물을 던져도 밤새도록 던지면 다만 피라미 몇마리라도 잡힐 법한데 단 한 마리도 안 잡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로 말하면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어 고기잡이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갈릴리 바다라면 손바닥 보듯이 훤히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은 몰라도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는 일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밤새도록 그물질 했지만 헛 그물질이었습니다. 피라미새끼 한 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고생만 실컷하고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빈털터리였습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인생, 주님을 떠난 인생이 바로 이와같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버리고 자기 맘대로 사는 인생에게 얼마나 쓰라린 실패가 있는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기 맘대로 살아갈 때는 제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국 남는 것은 처절한 실패뿐이요, 빈손 뿐이요, 빈 그물 뿐이요, 빈 배 뿐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 그렇습니까? 주님없는 인생에게 무엇이 남겠습니까? 혹시 잠시 무엇인가를 얻는 것처럼 보인다해도 무엇이 자신과 영원히 함께 하겠습니까? 돈이 남겠습니까? 권세가 남겠습니까? 건강이 남겠습니까?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남는 것이라곤 공허뿐이요,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렘2:13절에서는 말씀합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는데 그게 뭐냐 하나님을 버린 것과 제 맘대로 간 것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과 축복과 평강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자기 생각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고기만 많이 잡으면 거기 행복이 있고, 거기 풍성한 삶이 있는 줄 알고 죽자사자 세상의 고기만 잡으러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터진 웅덩이에 물을 채우는 일이요,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일과 같아서 결국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결코 그런 어리석은 인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물론 세상의 고기도 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고기를 잡기 전에 주님께서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 영혼을 풍성케하고 주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힘쓰며 나와 내 가정과 교회와 이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정말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의 풍성한 은총을 마음껏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믿음의 사람들도 조차도 자꾸만 세상의 고기만 잡는 일에 열중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온전히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주일에도 세상의 고기를 잡으러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정열을 세상의 고기를 잡는 일에만 쏟아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이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습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남는 것은 빈배요, 고통과 상처뿐이요, 하나님의 진노뿐인 참으로 가려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정말로 내 생명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깨닫고 온전히 주님의 말씀을 따라 주님과 동행할 때에 생명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주님 말씀따라 행동했을 때 성공하였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맘대로 했을 때는 실패뿐이요, 반면에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주님의 뜻대로 행할 때에 확실한 성공이 보장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로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6절 보겠습니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여러분, 정말 놀라운 일입니까? 밤새도록 피라미 한 마리 못 잡았는데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니까 그물이 찢어질 만큼 엄청난 물고기가 잡혔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어디 다른 바다로 이동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멀리 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주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한 것 뿐이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사실 왼편이냐 오른편이냐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솔직히 그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며 설마하니 왼편에만 계속 그물을 던졌겠습니까? 설령 왼편에만 던졌다해도 왼편이나 오른편이 다른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배 밑에는 왼편이나 오른 편이나 서로 가까이서 통해져 있습니다. 그것도 무슨 커다한 항공모함도 아닌 조그만 배에서 왼편 오른편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자기들의 의지를 따라 던졌을 때는 밤새도록 잡았지만 한마리도 못잡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따라 던졌을 때는 그물이 찢어지도록 잡혔던 것입니다.

 

앞의 3절 말씀과 정 반대입니다. 주님을 떠나 자기 소견대로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을 때는 철저하게 실패했습니다. 피라미새끼 한 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밤새도록 헛고생 했습니다. 헛그물질을 했습니다. 고생만 죽도록 하고 소득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허탈과와 낙심과 절망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졌을 때는 그물이 찢어지도록 잡혔습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의 말씀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결코 네 생각, 네 지식, 네 경험속에 성공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다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위치나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기술이나 사람의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문제는 무엇에 의지해서 그물을 던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혜와 능력과 이성과 경험에 의지했을 때는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밤새도록 헛수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주님의 지시를 따라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그물을 던졌을 때는 그물이 찢어지도록 잡혔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성공의 비결입니다. 말씀따라 가는 것입니다. 말씀에 의지해서 인생의 발걸음을 옮겨 놓는 것입니다. 어디 멀리가야 성공이 있는 게 아닙니다. 대통령을 해야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높은 자리도 올라가야 합니다. 기왕이면 명예와 권세도 얻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더 잘되어야 합니다. 세상적으로도 앞서 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허락하심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방법대로 행하는 인생이라야 진정한 성공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있는 곳 그 곳에서 주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대로 그물을 던지는 것입니다. 농사를 짓든 직장생활을 하든 사업을 하든 높은 벼슬을 하든 내 방식대로 내 의지가 아니라 주님의 방법대로 주님의 말씀대로 하는 삶에 반드시 성공이 있고, 반드시 풍성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28:2절에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그러면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가도 복을 받고, 자녀가 복을 받고,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성읍에서도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영육간에 온전한 복을 받는 성공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오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바르게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성과 경험과 지식과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주님을 바르게 알고 주님의 말씀대로 인생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나 혼자 내 힘과 지혜대로 내 마음대로 헛 그물질 하지 말고, 주님께서 던지라는 곳에 그물을 던지고, 주님께서 거두라는 곳에서 거두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정 영육간에 생명의 풍성한 은혜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진정한 성공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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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주일 낮 예배 설교 평안을 누리는 인생

 

 

 

제목 : 샬롬(평안)을 누립시다

말씀 : 대하14:1~7


1.부정적인 에너지를 추방해야 합니다.

 

1995년 미국 정신의학회는 화병을 정식으로 신경정신질환의 일종으로 공인을 했습니다. 그들은 이 병을 소개하면서 유독 한국 사람들이 많이 앓는 신경정신 질환으로 한국민속증후군이라고 정의하며 병명을 우리말 그대로 ‘hwa-byung’이라고 영어로 표기하며 영어로는 ‘anger syndrome’(분노증후군)이라고 번역을 하며 분노를 지나치게 억제해서 생기는 병이라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화병이 생기면 가슴이 답답하거나 숨이 막히고, 가슴이나 목에 뭔가 응어리가 느껴집니다. 또한 두통이나 소화불량, 불면증, 식욕부진, 만성피로 등의 신체적 이상 증상이 나타나고, 또 정신적으로는 우울증이 생기거나 짜증을 잘 내고 작은 일에도 깜짝 깜짝 놀라는 등 불안과 초조속에 살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화병을 한문으로는 불 화(火)자에 질병 병(病)자를 씁니다. 즉 가슴 속에 속에 불덩어리 같은 게 들어 있는 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가슴속에서 뭔가 부정적인 뜨거운 기운이 끓어오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속에서 그 뜨거운 기운이 자신의 심령을 상하게 만들고 남에게 상처와 고통을 줄때가 많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가슴속에 뭔가 부정적으로 끓어 오르는 뜨거운 기운이 없어야 합니다. 이런 불이 마음속에 들어있으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말과 행동이 독하게 되기 쉽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나오기가 쉽고, 도전적이고 공격적으로 되기 쉽습니다. 또한 옆에 사람까지 그 부정적인 에너지가 전달되어 남까지도 부정적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 심령을 황폐하게 만들고 가족이나 이웃에게도 상처와 고통을 주어 삶을 파괴하기 쉬운 것입니다.

여러분, 약3:6절에 보면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마음속에 불이나 독이 들어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심령속에 들어있는 불을 꺼야 합니다. 독을 빼내야 합니다. 그래야 평안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불을 끌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마음의 불과 독을 다스리기 위하여 참선도 하고, 요가도 하고, 산에 가서 도를 닦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온전한 평안을 주지는 못합니다. 어떤 힘든 상황이 전개되면 곧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그러면 온전한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심령속에 온전히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나의 삶을 주님께 온전히 맡기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주님, 은혜의 주님, 평화의 주님, 위로의 주님, 능력의 주님께서 내 마음을 다스려 주셔서 불을 꺼주시고 부정적인 에너지를 물리쳐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온전한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문제에 대하여 묵상해보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할 때에 우리 심령의 모든 어둠과 독과 화를 온전히 몰아내 주실 분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다시 한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심령속에 온전히 모셔들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 가운데 우리 안에 들어있는 모든 어둠과 불과 독을 물리치고 주님이 주시는 샬롬을 풍성히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미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심령속의 모든 불과 독을 제거하고 참 평안을 누리려면 오직 주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신수양이나 참선을 통해서 평안을 누리려하고 반대로 어떤 이들은 돈이나 명예나 권세나 이런 것을 통하여 평안을 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로는 결코 참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상황이 변하고 조건이 사라지면 사라지는 평안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상황과 환경을 초월하는 심지어는 죽음앞에서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미술대학교에서 평안을 주제로 그림경시대회를 열었습니다. 학생들은 각기 자기 실력을 뽐내며 자기가 생각하는 평안의 모습을 열심히 그렸습니다. 드디어 제한 시간이 지나 그림을 평가하는데 두 그림이 최종결선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 두 그림은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히 반대되는 분위기였습니다.

한 그림은 양 옆과 뒤쪽은 푸르고 아름다운 산에 둘러싸여 있고 앞에는 평평한 풀밭이 있는 호수가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호수앞 풀밭에는 온갖 종류의 들꽃이 만발해 있고, 그 옆에서는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잔잔한 호수가 의자에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 다정하게 담화를 나누고 있는 그야말로 평화가 넘쳐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하나의 그림은 정반대였습니다. 바다와 큰 바위 절벽이 있는 그림이었는데 사나운 바람이 일어나 엄청난 파도가 밀려와 절벽에 부딪쳐 큰 거품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얼마나 심한지 바위 절벽위의 나무가 부러져 바다에 떠다니는 등 얼핏 보기에는 평안과 반대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절벽 사이의 바위틈에 갈매기 둥지가 있는데 그 둥지 속에는 새끼들이 엄마 품에 안겨 평안히 쉬고 있었습니다. 둥지 밖에는 그렇게도 사나운 바람과 파도가 난리를 치고 있는데 이 새끼들은 엄마 날개 밑에서 조금도 두려움이나 걱정 없이 평안히 쉬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 그림이 최우수작으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첫째 그림은 평화롭기는 한데 그것은 다만 이상적인 세계일 뿐 세상에는 그런 평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그림은 세상이 비록 험하고 힘들어도 무언가 절대적인 것에 의지하면 모든 상황과 환경을 초월하여 평안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잘 나타내주는 그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는 바람 잘 날이 별로 없습니다. 조금 잔잔한가 싶다가도 언제 험한 바람과 풍랑이 일어나 평안을 빼앗아 갈지 모릅니다. 그래서 외적인 조건으로 평화를 누리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세상은 너무나 죄와 무지가운데 있고, 환경도 본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아름다운 모습에서 너무나 많이 변질되어 있고, 나 또한 부족하고 약하고 미련할 때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 평안을 누리려면 오직 모든 생명과 평강과 위로와 소망과 기쁨의 근원이신 주님께 나와야 합니다. 오직 모든 생명과 소망의 근원이신 예수님만이 참 생명과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어떤 것을 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품에 안겨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모든 상황과 환경을 이기고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말하는 평안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샬롬이고, 다른 하나는 솨카트입니다. 샤카트는 한마디로 전쟁이나 기근이나 질병이나 사고나 천재지변이 없이 외적으로 평화로운 상태를 말합니다. 반면에 샬롬은 외적으로 전쟁이나 기근이나 천재지변이 없는 것도 포함하지만 그보다는 내적으로 사랑과 은혜와 평안과 기쁨이 충만한 상태를 말합니다.

 

물론 외적으로 전쟁이나 질병이나 천재지변이 없는 상태인 솨카트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님과 동행하는 자에게 이런 평안도 주십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에도 나타나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아비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의 시대에 그의 땅이 십 년 동안 평안하니라.” ‘십년 동안 평안하니라.’ 여기에 나오는 평안이 솨카트 즉 전쟁이 없이 평화를 누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평화의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었습니까? 십년입니다. 오늘 다 읽지는 않았지만 9절에 보면 10년 후에 구스 나라가 백만대군과 병거 삼백대를 거느리고 침공해 옴으로써 이 평화는 산산 조각이 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솨카트 즉 외적인 평안의 한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솨카트는 환경과 상황과 조건에 좌지우지되는 온전치 못한 평안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한 평안을 누리려면 솨카트가 아닌 샬롬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상황이나 환경이 안정됨으로써 누리는 평안보다 내적으로 우리의 심령속의 모든 문제가 해결됨으로 누리는 평안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환경과 상황을 이기고 참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평안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그것은 물론 말할 것도 없이 모든 생명과 기쁨과 평강과 위로의 소망의 근원이신 예수님께 있습니다. 우리에게 두려움과 불안과 공포와 아픔과 고통을 가져다주는 마귀사탄의 역사를 완전히 제압할 수 있고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주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사탄을 쫓아내고 성난 파도를 잠재우시는 주님만이 우리의 심령속의 모든 어둠과 두려움과 분노와 원망과 불평을 쫓아내고 온전한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4:27절 상반절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보십시오. 내가 평안을 주겠다.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르다. 세상이 주는 것은 잠시잠깐 뿐이요, 환경에 지배를 받는 것이지만 내가 주는 평안은 영원하고 모든 상황과 환경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런 말씀이지요.

 

그러므로 여러분, 더욱 주님 앞에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능력을 덧입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심령 속의 모든 어두운 것들과 부정적이고 사나운 기운들을 쫓아냄으로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 완전한 평화의 상태인 샬롬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주님을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직 주님 안에서만 우리는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 안에 있는 이 참 평안은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이것도 대답은 간단합니다. 주님을 가까이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주님을 열심히 찾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분명히 주님 안에 있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고도 남는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로 그런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4절과 7절을 보십시오. 먼저 4절을 같이 읽습니다.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또 7절도 좀 길지만 같이 읽습니다. “아사가 일찍이 유다 사람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여기에 보면 세 번 반복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찾는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다라쉬(darash)인데 이 말은 ‘자주가다, 찾다, 구하다, 문의하다, 노력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늘 하나님을 찾아가서 구하고 묻기를 힘썼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길을 찾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은 것입니다. 정녕 어떻게 해야하는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찾고 구하며 주의 뜻을 따라 살기를 힘썼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게 되었고 그 뜻을 따라 살게 되었고, 그럴 때 주의 은총이 함께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그럴 때 주님 안에 있는 평강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옛날에 래리 넬슨이라는 유명한 골퍼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핸가 아주 중요한 경기를 하고 있는 데 경기가 너무 안풀려 성적이 매우 부진했습니다. 그러자 점점 마음이 불안하고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이때 그는 그 자리에 앉아 두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모습을 본 1,2등을 다투며 선두 그룹을 달리던 친구가 조롱하듯 말했습니다. “어이 이봐, 친구, 하나님께 우승 트로피라도 달라고 기도하는 건가?”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아닐세. 나는 우승 트로피가 내 머리 속에서 사라지게 해 달라고 기도했네.” 그는 이렇게 모든 욕심을 버리고 평안하게 게임에 임할 수 있도록 해달고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경기에 임하자 정말 마음이 평안해지고 안정적으로 게임을 하게 되었고, 그러자 공이 홀 속으로 얼마나 잘 빨려 들어가는지 결국 하위권을 맴돌던 그가 그 경기에서 우승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은 평강의 주님이십니다. 은혜의 주님이십니다.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성난 파도를 명령하여 잔잔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난 바람을 명령하여 잠재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심령속의 모든 두려움과 공포와 욕심과 독과 화를 제거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주님께 구하면 분명히 평안을 주십니다. 은혜를 주십니다. 기쁨을 주십니다.

오늘6절 상반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누가 평안을 주셨습니까? 또 7절 하반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누가 평안을 주셨습니까? 물론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런 평안을 언제 주셨습니까? 그것은 2~5절까지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2절에 보면 아사는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 의를 행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모든 우상들을 철저하게 배격하고 그런 것들을 깨트려 버리고, 찍어 버렸습니다. 동시에 그는 백성들이 철저하게 하나님을 찾게 하고 율례와 명령을 행하게 하였습니다. 심지어 열왕기상 15장에 보면 그는 어머니가 우상을 섬기자 태후의 위를 폐해버리고 근신하도록 하였습니다. 즉 아사왕이 오직 하나님을 찾으며 모든 우상들을 철저히 배격하고 오직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평화를 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한 사실은 주님 안에 생명이 있고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생명이 있고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고 소망이 있기에 분명히 주님과 동행하는 자들은 그런 놀라운 은총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약하고 허물이 많고 미련하고 무지하고 어리석지만 우리 주님은 모든 마귀 사탄의 역사를 결박하고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그 분안에는 그 어떤 어둠도 깃들 수 없습니다. 마귀 사탄이 역사할 수 없습니다. 어둠의 세력이 득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길은 분명합니다. 우리의 심령속의 모든 어둠과 독과 화를 이길 수 있는 길도 분명합니다. 세상의 모든 상황과 환경을 이길 수 있는 길도 분명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모든 생명과 기쁨과 평강의 원출처인 예수님을 심령속에 모셔들이면 우리 심령속의 모든 화와 독과 모든 어둠의 세력들은 물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상황과 환경을 이기게 됩니다. 그러면 참 샬롬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오늘 말씀을 분명히 기억하며 오직 생명과 평안와 위로와 기쁨과 소망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가까이하며 주님께 자신의 삶을 온전히 의탁하며 그 품안에 안겨 살아갈때에 주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 가운데 내 심령속의 모든 어두운 것들과 화와 독을 내 쫓아버리고 동시에 외부적으로 다가오는 모든 어려운 현실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이기고 샬롬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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