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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오전 예배설교] 은혜받는 신앙인의 삶

 

 

 

말씀 : 막5:25-34

제목 : 은혜받는 믿음

 

1.주님과 소통이 잘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대화나 토론을 하다보면 정말 서로 안 통할 때가 있죠? 어떤 때는 정말 작은 문젠데 서로 죽어도 자기 생각이 맞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아 갈등이 생기고 큰소리가 나오고 그래서 서로 간에 틈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가치관이나 중요성이나 우선순위의 차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결국은 못난 자아 때문입니다. 그 알량한 자존심과 고집이 상대방의 뜻이나 방법을 인정해 주면 자기가 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양보하지 않는 거죠. 그래서 서로 끝까지 자기 주장을 하다가 상처를 주고 공동체의 힘을 빼기도 하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거 뭐 좀 방법이 다르고 우선순위가 다르더라도 그냥 서로 받아 주고 타협하면 될텐데 그 놈의 자존심이 뭔지 그거 때문에 서로 굽히지 않고 그래서 교회일을 추진하는데도 협조하지도 않고 너 잘하면 네가 다해라 그러면서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여 대화가 잘 통하게 해야 합니다. 끝까지 자기 잣대를 고집하며 다른 사람이 하는 일에 비판만 하지 말고 겸손히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관계가 형성되고 공동체가 세워지고 모두가 함께 평안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그렇지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더더욱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겸손한 자세로 주님의 말씀에 경청하여 나와 주님 사이에 막힘이 없게 해야 합니다. 자신의 가치관과 이성과 고집을 따라 행하면 주님과의 관계가 막혀 주님 나 사이에 벽이 생깁니다. 갈등이 생깁니다. 그러면 누구 손햅니까? 주님 안에 있는 그 풍성한 은혜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될 뿐이지요.

 

성경에도 보면 그런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의 대화를 보세요. 예수님이 베드로야, 내가 죽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이다. 그래야 너희가 살 것이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뭐라고 그럽니까? 안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면 이 땅위에서 메시야 왕국은 누가 건설합니까? 그렇게 대답하지요.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됩니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호된 꾸지람을 듣게 되지요.

 

또 어느 날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진리를 알아야 하느니라. 그래야 너희가 참 자유인이 될 것이니라.’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이 우리가 본래 자유인인데 뭘 또 자유인이 된다고 하십니까? 그렇게 대답하지요.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종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사람들은 육체적인 종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결국 죄의 종으로 살다가 죽게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그런 어리석음에 빠져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순진하게 엎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수없이 우리의 구원과 영생과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우리가 죽어야 살고, 좁은 길이 생명의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꾸만 내가 살아서 움직이고, 또 자꾸만 넓은 길로만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나와 예수님 사이에 대화가 잘 안되고 갈등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 있는 생명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면 주님안에서 그 놀라운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요11:39,4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죽은 지 나흘이 지났든 백일이 지났든 백년이 지났든 무슨 상관입니까? 주님이 그냥 그러라면 그러는 것이지요. 내 말을 들으면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상황이든 환경이든 경험이든 지식이든 이런 거 따지지 말고 그냥 말씀대로 하라는 게 아닙니까? 그러면 영광을 보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이제부터는 정말 상황, 환경, 조건 이런 거 따지지 말고 아집, 고집, 편견 이런 것도 버리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에 정말 생명의 주님, 부활의 주님, 구원의 주님, 그 주님과 온전한 교제속에서 생명의 은총을 풍성히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주님을 전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 상황이나 환경에 얽매이지 않고 또한 자신의 고집과 이성과 지식을 따라 살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삶으로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려면 먼저 주님께 대한 온전한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됩니다. 그러면 반드시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덧입어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바로 이런 순진한 믿음의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이성적, 경험적 생각이나 고집이나 아집이나 이런 것 다 버리고 주님 앞에 순진하게 나아가 결국 주님의 놀라운 은총을 덧입게 됩니다.

이 여인은 어떤 여인입니까?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을 당했던 여인입니다. 이 혈루증이 정확히 어떤 병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 병이 당시로서는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이요, 불치병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25,26절의 말씀을 보세요.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이 여인은 혈루증에 걸려 12년간 고생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요즘말로 하면 종합병원도 찾아가 보고, 한방병원도 찾아가보고, 민간요법도 써보고, 식이요법도 해보고, 벌침도 맞아보고 해 볼 것은 다 해봤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병이 낫기는커녕 힘만 들고 재산만 다 탕진하고 도리어 병은 점점 중해 갔던 것입니다.

게다가 여러분, 오늘 본문에는 나타나있지 않지만 이 여인의 고통은 단지 이런 육체적,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여인의 더 큰 고통은 주변으로부터 소외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시는 혈루증을 앓게 되면 부정한 사람으로 간주되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전에 접근하는 것도 금지됐고, 회당예배에 참석할 수도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이혼사유가 되는 병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은 모든 게 절망이었습니다. 육체도 망가지고, 재산도 다 탕진하고,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했습니다.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 희망의 소리가 들려온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그 지방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자신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며 결사적으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27,28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무슨 말씀입니까? 이 절망 속에 있던 여인이 예수님의 소문, 즉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고, 중풍병자, 눈먼 자, 귀먹은 자, 앉은뱅이 등 각종 병자들을 고치시며 그 말씀이 권세 있는 자의 말씀과 같다던 그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 그러자 이 여인은 귀가 번쩍 뜨이고, 눈이 번쩍 뜨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셨다고?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치유하고, 생명의 말씀을 전하고, 그래서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시는 그 예수님이 오신다고! 그렇다면 그분을 만나봐야지. 그분에게 가면 이 문제가 틀림없이 해결 될거야!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 이까짓 병고치는 것은 식은 죽 먹기가 아니겠는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 이 장면에서 우리가 먼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믿음으로 예수님 앞에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의 문제는 해결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도 예수님 앞에 나오면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생명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고, 은혜가 있고, 진리가 있고,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예수님 앞에 나오면 마음이 치료받고, 육신이 치료받고, 영혼이 치료받아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틀림없는 사실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면 해결됩니다. 틀림없이 해결됩니다. 육체의 문제, 마음의 문제, 물질의 문제, 영혼의 문제 다 해결됩니다. 다만 그분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 앞에 나와 주님을 믿고 그 분께 의뢰하면 어떤 방법으로든 반드시 해결되는 것입니다.

민11:2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여러분, 하나님이 능치 못할 일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허튼 소리를 하시겠습니까? 실제로 여러분, 말씀대로 해 보십시오. 왜 안 되겠습니까? 말씀대로 하면 다 해결됩니다. 물질적으로 부자가 되든 부자가 안되어도 행복하게 살든, 육신의 병이 다 낫든 병이 안 나아도 감사와 기쁨으로 살든 다 해결됩니다. 가정의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시고 문제가 생겨도 해결되게 하시고, 해결되지 않아도 사랑과 은혜로 다 덮게 하시든 여하튼 반드시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기 바랍니다.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진실로 주님안에서 여러분의 영혼과 마음과 육신과 정신이 치료함을 받고 생명의 은총을 온전히 누리는 복된 삶이 되시길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믿음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와같이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은 다음에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믿었으면 믿음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믿으면 믿은대로 행동해야 그 믿음이 진짜가 아니겠습니까? 아니 믿는다고 하면서 안 따라가면 그게 뭐가 믿는 거겠습니까?

오늘 27~29절까지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여러분, 보십시오. 여인이 예수님의 옷데 손만대어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온갖 장애물을 헤치고 실제로 예수님께 나아와 주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러자 곧 병이 치유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과정을 잘 보세요. 이 여인은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신다는 주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결사적으로 주님의 옷을 붙잡았습니다. 그랬더니 병이 나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누리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듣고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믿음으로 받아 들였으면 이제는 액션을 취해야 합니다. 행동으로 전력을 다해 주님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그러면 은혜는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 상황을 보세요. 지금은 예수님께 접근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31절 보세요.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이 말씀은 예수님이 자신의 몸에서 능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즉 무언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아시고,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셨을때 제자들이 한 말입니다.

아니 주님, 이 많은 무리가 이렇게 아우성을 치며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는데 누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는지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런 말이지요. 즉 예수님이 그곳에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이 여인뿐 아니라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서로 예수님을 가까이서 보기 위하여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여인이 예수님께 접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사생결단하고 예수님께 다가갔기 때문인 것입니다. 결사적으로 다가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로부터 능력이 빠져나와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가만히 계셨는데도 이 여인의 병이 나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거 정말 중요합니다. 나는 어떻게든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그분의 능력을 덧입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산다. 그분을 만나기만 하면, 그분을 만지기만 하면 낫는다. 그러므로 가다가 밟혀죽는 한이 있어도 나는 그분을 만나야 하겠다. 그분을 만져야 하겠다. 이런 각오와 이런 믿음이 있을 때 전심전력으로 예수님께 다가가 예수님을 터치했을 때 결국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예수님을 만진 사람이 어찌 이 여인 한 사람뿐이었겠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보려고, 말씀을 들으려고, 병고침을 받으려고 그래서 서로 예수님께 가까이가기 위하여 에워싸고 밀치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 와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갈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지고 스치고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이 여인의 만짐만이 예수님의 능력을 받는 만짐이 되었던 것입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깃을 스쳤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직 여인만이 주님의 옷자락 끝을 겨우 잡았을 때 거기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왜 이겠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여인의 터치는 다른 많은 사람들의 터치와는 전혀 달랐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터치했지만 그들의 터치는 무의미한 터치였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의 터치는 완전한 신뢰와 믿음의 터치였습니다. 확신의 터치였습니다. 주님을 전적으로 믿는 터치였습니다.

좀전에 보았던 말씀, 28절 보세요.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어떻게 만졌다고요?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만졌다는 것입니다. 이 분의 손이 아니라도 좋다. 이분의 발이 아니라도 좋다. 이 분의 옷만 만져도 나을 것이다. 이 분이라면, 이 분과 연결된 것이라면 아무것이라도 좋다. 그분과 연결된 지푸라기 하나라도 만져도 그분과 연결되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이런 믿음으로 만졌을 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과의 이런 터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진정 믿음으로 예수님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진정 믿음으로 주님의 옷자락이라도 아니 주님께 연결된 지푸라기라도 잡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결사적으로 반드시 은혜를 받고야 말겠다는 그런 믿음으로 주님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주님 곁을 스쳐 지나간 많은 사람들처럼 그냥 피상적으로 주님 곁을 맴도는 인생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녕 주님의 능력과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총을 온전히 믿으며 그 믿음으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향해 손을 뻗을 때에 주님의 능력이 여러분속에 역사하여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의 은총을 더욱 풍성히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그러자 결국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29절 말씀을 보세요.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이 여인이 그런 믿음으로 예수님을 터치했을 때 그 순간 병이 나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주목해 보아야 할 말씀은 34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여러분, 예수님의 이 부르심의 음성을 보십시오. ‘딸아...’ 그렇게 부르십니다. 여러분, 자녀를 부를 때 이름을 부르는 것과 ‘아들아...’ ‘딸아....’ 그렇게 부르는 것과 어느 것이 더 부모의 사랑이 진하게 느껴집니까? 물론 이름을 부를 때도 사랑으로 부르겠지만 웬지 ‘아들아, 딸아’ 그렇게 부르면 더 정감이 있고, 더 진한 애정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지금 예수님이 바로 이 여인에게 그렇게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주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병에서 해방될 뿐 아니라 영혼이 구원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평안히 가라. 이제는 평안할 것이다. 이제는 행복할 것이다. 이제는 복된 인생이 될 것이다 그런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이 여인의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이제는 더 이상 영적 무지의 자리에 앉아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주님 앞에 온전히 나오시기 바랍니다. 여인이 수많은 사람들을 헤치며 사생결단하고 주님 곁으로 왔듯이 주님을 향해 적극적으로 나오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주변에서 맴돌았던 많은 사람들처럼 그냥 주님 곁에 맴도는 인생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주님을 터치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정녕 주님의 능력을 덧입으시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실로 주님의 능력으로 모든 약한 것들과 어려운 것들을 이기고 주님의 평안과 주님의 생명의 은총을 더욱 충만히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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