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란 무엇인가?

 

 

기독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섬기는 종교입니다. 한국에서도 20%의 인구를 점유한 유력한 종교(불교, 유교와 더불어)입니다. 본 내용은 기독교에 대한 기초적인 소개를 위한 글로써 전도를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기독교는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기독교는 많은 분파들이 있습니다. 기본적인 구분으로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서방교회는 로마캐토릭(구교)과 개신교(신교)이며, 동방교회는 그리스, 러시아, 시리아 정교회라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로마캐토릭이 가장 광범위한 영역(유럽, 남아메리카)을 갖고 있고, 동방교회는 그리스, 러시아의 지역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개신교는 미국에서는 침례교, 영국에서는 영국국교회(성공회)와 스코틀랜드 장로교, 독일은 루터 교회, 네델란드는 개혁파의 분파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감리교, 구세군가 많은 분파가 발생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장로교”가 가장 큰 분파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분파의 총합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基督敎)는 “기독(基督)의 종교(宗敎)”라는 뜻입니다. 기독은 ‘그리스도’에 대한 중국의 번역으로 우리에게 소개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야소(耶蘇) 기독(基督)’으로 번역되었고, ‘야소’는 ‘예수’로 바뀌었지만 ‘기독’은 ‘그리스도’와 함께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국 선교 초기에는 “야소교(耶蘇敎)”로 소개되었다가 점차 ‘기독교’로 통합된 것으로 보입니다. ‘야소교’는 ‘예수교’입니다. ‘예수교’와 ‘그리스도교’는 동일한 종교인데 한국의 통상어가 ‘기독교’가 되었고, 영어도 ‘Christianity’로 됩니다. 한국 장로교의 역사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명칭이 가장 먼저 형성되었습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종교(Religion of Christ)” 혹은 예수의 종교(Religion of Jesus)입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가진 분파의 총칭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다를 때에는 이단이 됩니다. 다양한 분파는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에 대한 강조와 적용하는가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방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종교임으로, 그리스도로부터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그 순간 기독교가 되지 못합니다.

 

1. 인간에게 주어진 종교의 필연성

 

인간은 동물과 다른 많은 특징들이 있습니다. 언어, 유머, 창조성 등 그중에서도 ‘종교’는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입니다. 칼빈은 ‘종교의 씨앗’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근거 종교성을 제시했습니다. 종교는 모든 인간이 갖고 있습니다. 무종교도 종교의 일환이며, 무신론자도 신개념을 전제함으로 종교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입니다.

21세기 최첨단 과학 시대에 종교가 과학 아래로 서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종교가 세상을 결정합니다. 천동설과 지동설도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비도 종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현재에도 여전히 미신적인 제사 행위는 계속되며, 혹은 증가하기도 하였습니다. 과학이 만연된 사회에 오히려 미신이 증가하는 것은 진정한 종교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 종교는 평안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구원과 영생을 목표하는 종교입니다.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 여러 종교를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죄사함이 없는 상태, 영생의 소망이 없는 상태에서는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칼 맑스는 종교를 아편으로 주장하였습니다. 임시적으로 주어진 평안은 아편과 같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구원(죄사함)과 영생은 참 평안을 줍니다(요한 4:14).

 

2. 종교: 미신(거짓 믿음)과 복음(참된 믿음)

 

최첨단의 과학시대, 인터넷, 정보시대가 도래했는데 주변에는 점집이 계속해서 증가합니다. 궃, 당산제 등은 전통문화로 채색되어 우리의 주변을 범람하고 있습니다. 서양에서도 점이 성행하며 신비주의 종교가 범람합니다. 왜 사라져가던 미신 행위가 다시 우리 생활로 들어올까요? 미신은 불안을 증폭시키며 공포를 조장하고 제거하는 척하는, -병주고 약주는- 형태입니다. 불안이 증폭된 현 세대에서 쉬운 해결방법과 위로를 얻으려는 조급함이 미신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기복신앙으로 불리는 것도 일종의 미신입니다. 즉 자기의 안녕과 유익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주어지는 구원과 영생입니다. 값진 진주를 사기 위해서 모든 재산을 팔 수 있으며, 진리를 위해서라면 이익뿐만 아니라 생명도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신과 신앙이 다릅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철학과도 구별됩니다. 철학은 사상의 총합으로 진리를 추구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진리는 허무에 빠지게 됩니다. 현대철학은 불가지론, 허무주의로 귀결되었습니다. 기독교만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배하고, 자기 자신을 명확하게 성찰할 수 있습니다.

 

3. 종교: 과학(가설과 불확실) VS 믿음(정직한 이성)

 

이 시대의 시금석은 ‘과학에 근거한 합리성’입니다. 그렇다면 과학은 무엇입니까? 국어사전에는 “과학(科學)어떤 영역의 대상을 객관적인 방법으로, 계통적으로 연구하는 활동, 또는 그 성과의 내용.”으로 제시합니다. 객관성을 얻기 위해서 실험과 증명이 필요합니다. 실험과 증명으로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매우 적은 사항에 대해서만 증명되었지 실험에 의해서 증명된 사항은 많지 않습니다. 또한 기본 단위들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원주률(π)도 ‘3.14’라고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지구의 중력(g)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과학은 오차를 인정합니다. 과학은 진리와 양심의 시금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최첨단의 과학 시대로 정평된 지금에 오히려 윤리가 강조되며, IQ에 부가되어, EQ. SQ(Social, Spirit) 등 다양한 지수들이 등장합니다. 과학과 윤리는 인간의 고안물로서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가 명확하게 인정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집 센 인간은 한계에 대해서 절대로 인정도 물러서지도 않습니다.

기독교는 믿음으로 진리를 증명하는 체계입니다. 과학은 시대가 변하면서 바뀌고 바뀔 수 있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고 변할 수 없습니다.

 

4. 기독교 복음(福音)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의 시작입니다(마가 1:1). 보통 복음을 “좋은 소식, 기쁜 소식(good news)”라고 문자적으로 이해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주님에 대한 소식을 복음이라고 이해했지만, 그보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과 사역으로 이해(Sola Christus)해야 합니다.

복음은 죄인을 의인으로 세워주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롬 1:17). 복음은 죄인이 의인이 되는 하나님의 구속 경륜에 대한 선포입니다. 복음은 죄인을 구속하시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 영원한 인격과 지상의 공생애 3년의 사역, 승천과 통치입니다. 복음은 인간적 산물이 아니기 때문에 비록 인간 방법과 언어로 제시되었다할지라도,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복음은 오직 믿음(Sola Fide)으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복음으로 죄사함의 신비를 믿어 새 생명의 기쁨과 능력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복음으로 영생의 소망을 갖게 됩니다.

 

5. 기독교의 신(神) 명칭: ‘하나님’과 ‘하느님’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신 명칭이 ‘하나님’이냐? ‘하느님’이냐?라는 의견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느님’은 ‘신(神)’과 동일합니다. 초기 한국 선교에서는 하나님을 ‘천부(天父)’, ‘상제(上帝)’등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영어에서는 ‘God’와 ‘god’로 구별하지만, 독일어에서는 ‘Gott’와 ‘Gott’로 동일합니다. 한국에서는 ‘신(神)’으로 ‘하느님’으로 부르지만, 기독교 교회에서만큼은 ‘하나님’으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안에서 로마교회를 중심으로 ‘하느님’으로 전환하였고, 기독교 진보 진영에서 ‘하느님’으로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아름다운 일 중 하나는 독자적인 신명(神名)을 창출한 것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도 자신의 신의 이름을 창출한 종교가 없고 기존에서 사용한 신의 이름을 부과했습니다. 아랍권에서 기독교 진영에서 ‘알라’라는 신명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주장한다고 합니다. God, Gott, 알라까지도 자신의 신(神) 개념을 만들지 못했지만(인도네시아는 자국어로 성경을 편찬하지 못하도록 금지), 우리나라에서는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구별하여 기존의 신, 토속신과 다른 유일하신 신(神)을 고백하는 고귀한 일을 하였습니다.

 

6.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존재

 

신(神) 존재에 대한 인정은 인간의 죄성을 인정하는 것과 동일하게 인류의 보편적인 성향입니다(롬 1:19-20). 칼빈은 인류에게 있는 미신 숭배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제시합니다. 아무리 인간이 신(神)을 부정하려고 해도 인류는 부정하지 못했습니다. 본래적으로 참 신(神)을 섬기는 것은 자연이성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성경은 죄 아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제시합니다. 그리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며, 혹여 알수있다할지라도 거부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존재이기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명확히 아는 것은 절대적인 일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정당한 삶의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7. 인간의 죄된 본성

 

인간에 대해서 긍정적이고 완전한 상태로 평가한 종교, 혹은 철학 그리고 과학은 없습니다. 모든 종교, 윤리, 철학에서 인간은 항상 연약하며, 부족합니다. 그런데 기독교 인간 이해의 독특함은 “죄(罪)”로 규정하며, 생래적인 죄(원죄)로 이해합니다.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해결할 수 있는 완전한 방법을 제시하는 종교나 철학은 없습니다.

인간 심리에 대한 연구가 100년 이상 전개되었지만, 결국 알 수 없음으로 규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정신병, 우울증 등을 치료하기 위해서 물리적으로 치료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의 해결을 제시합니다. 죄가 가리 울 때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자기 자신도 그리고 이웃 인간 그리고 피조물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제시하는 죄의 해결은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8. 인간의 본성의 회복

 

성경은 모든 인간을 죄인으로(롬 3장) 규정합니다. 많은 종교들은 사람을 죄인으로 규정하지 않고, 무한 가능성을 내재한 존재 혹은 하나님의 자원을 받을 수 있는 존재로 규정합니다. 종교들은 명확히 문제를 지시하지도 해결 방법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죄가 있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능성도 없는 것으로 규정합니다(롬 3:11, 롬3:23). 인간을 철저하게 부패한 죄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진단에 대한 치료책이 있기 때문입니다(마 9:12, 막 2:17).

인간의 죄된 본성의 치료자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구속주로 이 땅에 오셔서 치료의 방법을 보여주셨습니다. 구속주께서는 속죄 제물로 자기의 몸을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치료(의의 수여의 근거 확립)하였습니다. 치료를 받은 사람(속죄의 믿음)은 건강한 삶을 영원한 통치자와 살게 됩니다(화해). 인류의 유일한 구속주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롬 10:13).

 

9.구속주 예수 그리스도

 

도입에서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치료하여 회복시키는 의사(치료자)로서 구속주이십니다. 예수께서 구속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성육신하셔서 구속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첫째, 치료의 방법으로 구속 사역을 하셨습니다. 아담의 죄악을 치료하시기 위한 구속 사역은 성육신과 십자가에서 속죄 제사로 이루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몸소 인간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속죄 제사를 완성하셔, 누구든지 예수의 구속 사역을 믿는 자에게는 회복의 길(속죄=칭의)을 열었습니다. 이 속죄 제사는 구약 성경(특히 레위기)에 예표 되어 있습니다.

둘째, 치료의 방법은 믿음의 백성들을 다스리심으로 완전한 회복(성화=화해)을 성취하십니다. 십자가와 부활 후에 승천하신 주(主)께서 성령을 교회에 보내심으로 백성의 다스리심을 확정하였습니다. 예수를 믿는 백성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아, 주와 함께 연합하게 됩니다.

 

10.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머리

 

영원한 하나님의 경륜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복음의 가르침을 통하여 가장 큰 자로부터 가장 작은 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를 자기와 연합함으로 한 자신의 나라(그리스도의 왕국)를 창설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유일한 제사장으로서 자신의 몸을 죽음의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 아버지의 노하심을 녹이셨는데, 그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계속해서 깨끗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의 피는 우리들의 죄의 영원한 속죄 행위이며 우리들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죄 씻는 정결의 수단입니다.

그의 순종은 우리들의 완전한 화해이라는 것이고, 그는 우리들의 기도가 그의 은혜로 인하여 가납(嘉納)되게 하는 유일한 도고이십니다. 그는 우리들을 보호 아래 감싸 주시는 신실한 우리의 보호자가 되신다는 사실이며, 우리들의 육신의 죄를 제어하여 의와 거룩한 것으로 우리를 다시 지으시고, 그 자신만이 우리 안에서 복된 삶을 시작하시고 완성하신다는 사실입니다. - 칼빈의 사도행전 주석 헌사에서 발췌 - 신약성경의 사도행전은 그리스도의 천상 통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1. 죄사함

 

기독교는 죄사함의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오신 구세주(그리스도)입니다. 작금의 종교들은 죄사함이 아닌, 마음의 평화, 기쁨을 추구합니다. 종교의 목적이 마음의 평안과 위로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합니다. 즉 마음의 평안과 위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죄사함과 영생입니다. 기독교에 죄사함이 없는 마음의 평안은 위선입니다. 맑스는 종교를 ‘아편’이라고 평가했는데 타당성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아편을 취급하지 않고, 생명을 취급합니다. 맑스의 제자들이 아편을 제거하려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인간 본성에 뿌리박힌 종교심은 제거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인류의 종교는 마음의 평안을 추구함이 총합이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죄사함을 통한 평안과 위로를 추구합니다.

이 죄사함의 근거가 예수님께서 피 흘리시고 죽으신 십자가의 죽음과 천상에 계신 예수님께서 마치 사도 바울을 부른 것처럼 자기 백성을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12. 그리스도인의 삶(성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 즉 죄사함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죄사함은 사람을 아는 지식을 정당하게 세울 수 있으며,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게 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속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삶을 영위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성령으로 삽니다. 성령의 삶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항상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삽니다. 천상에 계신 그리스도와 연합을 믿습니다.

둘째, 성령의 은사로 자기의 소명을 이루어 갑니다. 죄사함은 동일하지만, 은사는 다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적인 은사를 받았음으로 개발, 활용해야 합니다.

셋째, 그리스도인의 삶은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넷째,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도의 삶입니다.

 

 

13. 기독교 - 그리스도인의 모임 = 교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항상 공동체를 만들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은 처음 시작이 120명, 교회에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혼자서 사역하지 않으시고, 12명, 70명의 제자를 두어 공동체를 형성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를 만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교회는 구원의 표징으로 필수적이며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를 떠난 그리스도인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도는 각 지체들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성도들은 머리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지체들입니다. 이 교회는 성경 위에 설립되어지며, 성경으로 운영되는 말씀 공동체입니다. 말씀의 권위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없습니다. 둘째, 교회는 교제하는 공동체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성도를 더욱 성도답게 만들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합니다. 셋째, 성례(세례와 성찬)를 거행하는 모임입니다. 교회의 회중은 어쩌면 성례를 거행하기 이한 모임일 수도 있습니다. 넷째, 교회는 기도하는 공동체입니다. 기도는 연결하는 점입니다. 모든 곳에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연결하고, 기도로 끝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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