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  명철을 얻으라고

 

 


제목 : 높임받는 삶을 위하여

말씀 : 잠4:1-9

오늘도 계속되는 지혜의 말씀. 다시금 지혜의 필요성, 그 결과를 강조. 계속되는 지혜의 초청.

어떻게 보면 정말 지루할 정도로 계속해서 강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또 이야기. 어쩌면 이미 다 말씀해 왔던 부분들, 그런데 또 강조. 그렇다면 왜 그렇게 잔소리라도 하듯 계속 반복하고 있는가? 물론 그만큼 중요하니까, 그만큼 좋은 것이니까,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인생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오늘 7절에서도 말씀.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 지니라.” 여러분, 제일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는가? 말그대로 제일이다. 제일이라는 것은 첫째를 말한다. 세상에서 제일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사실 제일은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다. 제일, 그야말로 최상급이다. 최상급은 최고로 좋은 것이다. 그 위에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일은 하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게 제일이다, 저게 제일이다하지만 사실은 제일이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지혜가 제일이라는 것은 지혜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말이다. 세상의 다른 어떤 것도 지혜보다는 못하다는 것이다. 지혜가 세상의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돈보다도 명예보다도 권력보다도 건강보다도 지혜가 더 낫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지혜를 제일로 생각하는가? 과연 우리는 하나님을 제일로 생각하는가? 과연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제일로 생각하는가?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최고의 지혜로 여기는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가? 그래야한다. 실제로 그렇다. 지혜가 제일이다. 하나님이 제일이다. 그 안에 있는 은혜가 제일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세상의 어떤 것과 동행하는 것보다 낫다.

그러므로 7절에서는 다시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너의 얻은 것, 그러니까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그것을 다 바쳐서라도 다 투자해서라도 지혜를 소유하라는 것이다. 이유는 물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지혜가 더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13:44-46)

그러니까 천국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귀해서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그것을 사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천국을 돈주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너의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사들여야 할 만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물론 그 이유야 생명이 천하보다도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잃는 사람은 설령 천하를 얻는다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안에 생명의 길이 있고, 세상에서도 축복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것을 다 팔아서라도 이 생명안에 있는 지혜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 그 무엇보다도 이 지혜를 최고로 여기라. 그리고 그것을 얻으라. 그것을 위하여 투자하라. 그렇다면 이 지혜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이미 얻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더 큰 지혜를 소유하며 더 큰 은혜를 누릴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인가?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점을 말씀하고 있다.

1.지혜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1절)

1절에 보면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훈계를 들으며, 또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고 했을 때 「듣는다」는 것은 그냥 귀로만 듣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기서는 듣는다는 말은 「듣다, 경청하다, 순종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까 지혜의 말씀을 귀로는 듣고, 마음에는 새기고, 그 마음에 새긴바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 이것이 듣는다는 말의 의미인 것이다.

우리말에도 말을 잘 들어라하면 그냥 귀로 듣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을 잘 들어라하면 귀로 잘 듣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라는 말인 것이다.

또 「주의하다」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이 말은 물론 먼저 「귀를 기울이다, 경청하다, 청종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청종이란 말은 말그대로 듣고 순종한다는 뜻이다. 역시 우리말에도 주의하라 그러면 그냥 조심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조심해서 올바른 길로 가라는 말인 것과 같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한 지혜를 얻기 위하여 할 일은 바로 이것이다. 우선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마음에 새겨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마음에 새긴을 것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선은 귀로 주의해서 들어야 하지 않는가? 그래야 마음에 새기든지 말든지 할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냥 듣기만 하면 무얼하는가? 마음에 새기기만 하면 무얼 하는가? 마음에 새겨 졌으면 이제는 그것을 따라 살아가야지.

그러므로 우선을 귀로 들어야한다. 귀로 듣고 마음에 새기자. 새기고 따라가자. 귀로 듣기 위하여 말씀을 가까이 하라. 하나님의 교회를 가까이 하라. 예배 시간을 소중히 여기라. 그러면 참 지혜자가 된다. 은혜충만한 삶을 살게 된다.

2.지혜를 얻어야 한다.(1,5)

1절에서는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고 하였고, 5절에서는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고 말씀하고 있다. 또 7절에서는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얻는다는 말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무엇인가를 획득하라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얻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투자해서 혹은 대가를 지불하고 얻으라는 그런 말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서도 투자가 필요하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도 투자가 필요하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도 투자가 필요하다. 하물며 그 보다 더 귀한 지혜를 얻기 위하여 어찌 투자가 필요하지 않으랴!

요즘 사람들이 노력없이 무엇인가를 얻기 위하여 애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미련한 일이다. 진짜배기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냥 얻어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치없는 것이다. 설령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해도 공짜로 얻어지는 그 순간 사실을 별로 가치가 없어지고 만다. 그냥은 잘 얻어지지도 않거니와 설령 얻는다해도 그것도 다 무의미하다. 무가치하다. 열심히 수고하고 일하고 노력해서 얻은 것이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고, 보람이 있다.

그러므로 지혜를 얻는 것에도 투자가 필요하다. 노력이 필요하다. 애씀이 필요하다. 그래서 5절에서 지혜를 얻으라는 말은 열심히 해서, 무엇인가를 바쳐서 그래서 값진 보물을 소유하라는 그런 말씀인 것이다. 좀전에 말씀드렸던 예수님의 밭에 감추인 보화에서도 말씀하고 있지 않은가?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13:44-46)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의 은혜를 누리기 위하여 투자하자. 은혜로운 삶을 위하여 투자하자. 구원의 은총이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하니까 가만히 앉아서 놀고 먹고 있어도 천국의 은혜를 주신다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구원의 은총을 값없이 주셨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값이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이다.

그러므로 그 크신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값없이 그 구원의 은총을 받았은즉 더욱 그 은혜를 누리기 위하여 그 나라를 위하여 힘쓰고 애쓰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주님의 생명의 역사를 위하여, 그리고 나자신의 은혜 충만한 삶을 위하여 그리하자.

3.지혜를 잊어버리거나 버리지 말라.(5,6절)

5절에 보면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고 하였고, 6절에서는 “지혜를 버리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다. 5절에서 잊지 말라고 했을 때 잊지말라는 말은 「잊다, 모르다, 무시하다, 시들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이다. 그러니까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겼으면 이제는 그것을 늘 묵상하고 적용함으로써 그 말씀들을 잊거나 무시하거나 희미해지거나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들이 언제나 선명하게 남아서 그래서 그 말씀들이 살아있어서 그 말씀들을 따라 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의 일상생활속에서 얼마나 예수님을 생각하며 살았는가? 우리의 삶의 현장속에서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선명하게 기억하며 살았는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잊어버리지 살때가 얼마나 많은가? 일상생활속에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고 교회에 와서야 예수님 생각하고, 말씀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나?

또 심지어는 6절에서는 버리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5절에서는 고의적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무관심하니까 잊어버리고 무시하는 것이므로 잊는 것도 문제긴 문제지만 버린다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버린다는 것은 고의적이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 그럴까? 아마도 나의 삶속에서 무언가 손해를 볼 것 같으면 그렇지 않을까? 일상생활속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했다간 무언가 손해가 올 것 같으면 짐짓 모르는체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적 가치관과 물질을 따라 가는 그런 모습은 없었을까?

그러나 이것도 미련한 일이다. 결국은 손해보는 일이다. 설령 물질적인 면에서 혹은 정신적인 면에서 좀 남는 장사를 했다해도 결국은 그것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속에서 말씀을 잊거나 더더구나 버리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자. 오직 우직하게 말씀을 따르자. 그러면 반드시 은혜가 오고 기쁨이 온다.

4.지혜를 사랑하라.(6,8)

6절에 보면 “그를 사랑하라.”고 하였고, 8절에서는 “그를 품으라.”고 하였다. 물론 여기서 그란 지혜를 말한다. 그러니까 지혜를 사랑하여 그것을 마음속에 꼭 품고 다니라는 것이다. 마치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마음속에 떠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정말 사랑에 빠지면 그 마음속에 온통 그 사랑하는 대상으로 가득차 있지 않은가? 그를 사랑하고 그를 마음에 품으라는 말은 이런 뜻이다.

성경에서 사랑은 자신을 강요하여 그 사랑하는 대상으로 이끌어 가는 자발적인 힘을 말한다. 그러니까 사랑에 완전히 붙잡히게 되면 스스로 자신을 강요하면서 그 사랑하는 대상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해주기 위하여 애쓴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사는가? 우리는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고 사는가? 우리는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차서 자나 깨나 주님을 생각하며 앉으나 서나 예수님으로 우리의 가슴에 가득차 있는가? 얼마나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하여 자신을 강요하며 나아가고 있는가?

5.지혜를 높이라(8)

오늘 8절에보니까 그 곧 지혜를 높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성경에서 높이라는 말씀은 「둑을 쌓아 올리다. 찬양하다. 값을 비싸게 매기다. 존중하다.」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의미를 하나님께 혹은 예수님께 혹은 말씀에게 적용시켜 보면 지혜를 높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금방알 수 있다.

그러니까 먼저는 지혜를 높이높이 쌓아올리라는 것이다. 말씀을 사모해서, 말씀을 존중해서 그래서 자꾸만 말씀을 접하면서 말씀을 우리의 심령에 자꾸만 쌓아올리는 것, 그것이 말씀을 높이는 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다음에는 물론 말 그대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이다. 찬양한다는 것은 훌륭하고 아름답고 가치있는 것을 높이고 칭찬하고 영광을 돌리는 행위이다. 하나님보다 더 훌륭하고 아름답고 선하고 위대한 것이 없으니 최상의 찬양을 돌려야 하고 그것이 곧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다음에 값을 높이 비싸게 매기라는 말을 의미를 생각해보자. 이것은 가장 높게 평가하라는 뜻이다. 이것도 역시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하나님보다 더 높게 평가할 것이 세상에 무엇인가? 그러나 우리의 삶속에서는 정말 하나님을 가장 높게 평가하는가? 그렇다면 그 말에 순종하는가? 가장 높은데, 가장 옳은데, 가장 훌륭한데 왜 따르지 않는가?

존중하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들으라는 것이다. 좇으라는 것이다. 그가 최고니까, 그가 선이니까, 그가 생명이니까 그를 따르라는 것이다.

그렇다. 그가 최고다. 그가 제일이다. 그가 선이다. 그가 진리다. 그가 생명이다. 그러므로 그를 따르라. 제일로 여기라. 정말 그렇게 여기라. 그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기고 청종하라. 그의 법을 잊어 버리지 말라. 버리질랑 더더구나 말라. 모든 것을 투자해서라도 지혜를 얻으라. 모든 것을 잃는 한이 있어도 주님을 얻으라. 다른 어떤 것을 사랑하는 것보다 말씀을 사랑하라. 주님을 사랑하라. 다른 어떤 것을 가슴에 품는 것보다도 주님을 가슴에 품고 살라.

그러면 정녕 살게 된다. 진짜 사는 것 같이 산다.(4) 그가 지키신다.(6절) 언제 어떤 상황속에서도 동행하신다. 인도하신다. 그리하면 영화롭게 한다.(8) 결코 궁색하게 만들지 않는다. 결코 힘들어 지치고 고단하고 슬프게 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관을 머리에 두신다.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신다.(9)

우리 온 성도들은 진실로 지혜를 사랑하며 그와 동행하는 삶을 통하여 이런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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