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행복한 인생

 

 

 
제목 : 행복한 인생

말씀 : 골4:2~4

1.행복은 마음에 있습니다.

존 스타인벡의 ‘진주’라는 소설의 내용입니다. 멕시코의 어느 바닷가에 가난한 부부가 있었는데 어느 날 아들이 전갈에 물려 병원을 찾아갔지만 돈이 없다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합니다. 할 수 없이 엄마는 전갈에 물린 부위를 입으로 빨아 독을 빼내고 아버지는 아들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진주조개를 잡으러 갔다가 엄청나게 큰 진주가 들어 있는 조개를 잡게 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그야말로 로또복권에 당첨된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돈이 없다는 이유로 전갈에 물린 아들을 문전박대하던 의사가 스스로 찾아와 치료해 주겠다고 하고, 그를 업신여기며 따돌리던 동네 사람들도 너나 할 것없이 찾아와서 친한 척을 하였습니다. 또 평소에는 왕래도 없던 먼 친척들이 찾아와 도와 달라고 하고, 사회복지 단체에서도 찾아 도움을 요청하고, 성당의 신부도 은근히 큰 헌금을 기대하여 부담을 주었고, 각지에서 장사꾼들이 몰려와 협작하여 진주를 헐값에 사려고 난리를 쳤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 부부는 고민하다가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는데 거기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떻게 찾았는지 많은 사람들이 쫓아와 도움을 요청하고, 장사꾼들이 헐값에 진주를 차지하려고 달려들어 결국 그들이 손에 의하여 사랑하는 아들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자 아버지도 그들을 추적하여 원수를 죽이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 진주를 바다에 던져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존스타인 벡은 소설을 통하여 현대인들이 돈만 있으면 행복할 줄 알고 난리를 치지만 오히려 돈 때문에 도리어 서로 싸우고 속이고 심지어는 죽이며 그래서 결국 행복은커녕 불안과 두려움과 고통 속에 빠질 때가 많다는 것을 일깨워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행복은 조건이나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성적순도 아니고, 재물이나 권력이나 명예 순이 아닙니다. 행복은 마음순입니다. 그래서 “봄은 만물이 소생하니 좋고, 여름은 초목이 우거지니 좋고, 가을은 열매가 있어 좋고, 겨울에는 하얀 눈을 볼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시사철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봄은 건조해서 싫고, 여름은 더워서 싫고, 가을은 고독해서 싫고, 겨울은 추워서 싫다.”고 하는 사람은 사시사철 불행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잠4:23절에서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셨고, 예수님께서는 마15:18절에서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모든 생명과 기쁨과 슬픔과 아름다움과 추함이 마음에서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마음을 믿음과 사랑과 은혜와 감사로 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을 그렇게 진정 복된 마음으로 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2.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생명과 기쁨과 감사와 은혜가 넘치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심령 속에 들어있는 죄와 무지를 해결해야 진정한 생명의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데 이것은 이것을 이기는 길은 말씀과 기도뿐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말씀과 기도로 우리의 심령 속에서 꿈틀거리는 죄와 무지를 물리칠 때만이 진정한 은혜와 사랑과 기쁨으로 우리의 심령이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2절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즉 꼭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되 계속해야 한다. 계속하는데 특히 감사의 기도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행위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요, 영적인 호흡을 통해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들이는 일이요, 하나님의 뜻을 묻는 일이요,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아뢰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요, 교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없이는 하나님과 올바른 교통이 이루어질 수 없고, 하나님과 올바르게 교통하지 않으면 진정한 생명과 은혜와 평강과 기쁨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반드시 해야 하는데 지속적으로 계속해야 합니다. 몇 번 해보고 때려치우거나 옛날에 많이 했다고 중단하거나 응답이 없다고 그만 두거나 하지 말고 천국에 갈 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성이 풍성한 상태가 계속 유지되고 영성이 풍성한 상태가 계속 유지되어야 주님의 은혜와 능력과 평강도 계속적으로 풍성하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기도뿐만 아니라 삶 전체가 그렇습니다. 무엇이든 조금하다 말면 소용없습니다. 축구선수가 축구를 잘하려면 매일 꾸준히 공을 차야 합니다. 피아노를 잘 치려면 매일 계속해서 피아노를 쳐야 합니다. 공부도 꾸준히 하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 까먹는 것입니다. 기도도 계속 끈질기게 해야 합니다. 잘 안 들리는 것 같아도, 응답이 없는 것 같아도 계속 기도해야 주님과의 교통이 지속적으로 잘 이루어져 계속해서 주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주님과의 온전한 교통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주님과의 온전한 교통이 이루어지 않고는 주님 안에 있는 생명의 풍성한 은혜를 온전히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꼭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되 중단하지 말고 계속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분명히 하나님과의 깊고 풍성한 교제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 속에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범사에 감사하는 복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모두가 그런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할 때에 끈질기게 하는 것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감사함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어떤 분이 실험을 했습니다. 빈민촌에 들어가 열집을 선택해서 현관에 매일 50불을 놓고 갔습니다. 그러자 첫 날은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멈칫멈칫하다가 돈을 집어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열흘 쯤 지나니까 사람들은 그를 기다렸다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돈을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다가 한 20여일 지나니까 돈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돈이 오자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가지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 되어 돈을 갖다놓지 않으니까 ‘왜 오늘은 돈을 안 가져오는 거야. 뭐야 우릴 놀린 거야 뭐야. 주려면 계속주지 왜 주다 마는거야?’하면서 비난하고 불평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을 보자 ‘여보, 오늘은 왜 돈을 안 주는 거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는 건 당연한 일 아니요?’하면서 마치 빚쟁이처럼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이야기 입니까? 무언가 은혜를 끼쳤을 때 처음에는 감사하고 기뻐하지만 그것이 일상화되면 감사는커녕 도리어 무슨 빚쟁이처럼 내놓으라고 하고 안주면 난리를 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도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공짜로 주신 것인데 계속 너무 많이 주시니까 감사할 줄 모르게 된 것입니다. 감사는커녕 남보다 조금 덜 받았다고 생각하면 불평불만을 토하고 하나님께 내 놓으라고 난리를 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많은지를 알아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무너무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모르고 마치 아무것도 가지지 못할 자처럼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정말 얼마든지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얼마전 신문에 보니까 어떤 분이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우리나라 꽤 괜찮은 나라라고 평가하고 있는데 우리만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모임에서 세계적인 명사들이 모였습니다. 거기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김용 세계은행 총재도 있었고 오바마 현 미국 대통령과 클링턴 전 미국 대통령도 참석하였습니다. 그때 클링턴 미국 전 대통령이 한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농담아닌 농담을 던졌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유엔사무총장이 한국인이었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국제기구중 하나인 세계은행 총재도 한국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얼마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국제연합기구 중의 하나인 GCF(녹색기후기금)의 한국유치가 확정되었습니다. 세계경제10개대국의 반열에 올랐고,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 확산 되어 문화강국도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안정되고 자유와 질서가 잘 잡힌 나라도 그닥 많지 않습니다. 이만하면 꽤 괜찮은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대선 레이스를 벌이고 있는 3인방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는 지도자가 못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대한민국을 정말 어떻게 하면 세계에서 리더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갈 것인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서로 물고 뜯고 과거에만 집착하여 흠집내고 할퀴기에만 급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정말 놀라운 축복의 땅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선은 감사해야 하고 다음에는 어떻게 우리의 다음세대에게 더욱 풍성하고 아름다운 땅을 물려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현재에 감사하며 더욱 나은 미래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감사하기 위해서는 정말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늘 헤아려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보았던 2절 말씀 다시 봅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계속 기도하라. 특별히 감사기도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것이 많지만 감사할 것만큼 많습니까? 우리가 살아 숨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먹고 입고 자고 생각하고 말하고 숨쉬고 걷고 뛰고 움직이고 생활하는 모든 것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감사할 때 은혜가 임하고 기쁨이 임하고 평안이 임합니다. 성령이 역사합니다. 그러나 불평불만하면 마귀가 역사하고 어두움이 임하고 미움과 시기가 찾아옵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이 최고의 부자이고, 최고의 신자입니다. 최고의 기도, 최고의 영성은 감사할 줄 아는 모습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늘 우리가 얼마나 큰 은혜 가운데 살고 있는지를 기억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갈 때에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과 은혜가 가득한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귀한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높은 자존감 가운데 만족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은둔형 외톨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은둔형 외톨이는 밖에 잘 나오지 않고 방에 틀어 박혀서 TV를 보거나 인터넷에 빠져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원인은 주로 가정 파탄, 부모의 폭행, 집단에서의 왕따, 인터넷 게임 중독 등으로 보고 있으며, 이들은 많은 경우 우울증, 성격장애, 강박증, 공격성 등의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어 이들로 인하여 큰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되는 근본적 원인은 무엇이겠습니까? 가정 붕괴, 부모의 폭행, 왕따, 인터넷 게임 중독 등은 외적인 요인이고 내적인 요인은 그런 환경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자존감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학대받고 무시당하고 살아감으로 자신을 무가치하고 무능하게 여기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만나기 싫어지고 그래서 결국은 거기에 대한 반항으로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행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자존감을 가져야 합니다. 자존감은 자존심과는 다른 것입니다. 자존심은 남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높임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남보다 더 잘나고 더 높아지고 더 많이 가져야하기 때문에 남을 헐뜯고 무시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자존감은 남이나 환경이나 조건에 상관없이 스스로를 귀하고 가치있는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남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남이 알아주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습니다. 남보다 높아지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헐뜯지도 않습니다. 나 자체로 귀한 존재니까 그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신과 남을 귀히 여기며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내가 너무나 귀한 존재니까 나 자신을 무가치하게 무의미하게 추하게 사용하지 않고 귀하게 아름답게 사용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정말 아름답고 복되며 만족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전도의 문이 열리도록 기도하라. 나는 이 일을 위하여 매임을 당하였다. 즉 사도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지 스스로 이 거룩한 사역을 위한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이 거룩하고 귀한 사역에 쓰임받고 있다는 분명한 자긍심 가운데 자부심을 가지고 감사와 기쁨으로 주신 사명 감당하여 살아가는 행복한 인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도 이런 사역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갈 수 있고 동시에 우리 자신도 귀한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왜 아니겠습니까? 세상에서도 사람들이 보기에 귀한 일을 한다면 얼마나 스스로가 자랑스럽겠습니까? 자신이 자랑스러우면 그 삶에 또한 얼마나 만족과 기쁨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온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이 귀한 사역에 참여한다면 얼마나 굉장한 일이겠습니까? 이 귀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참여한다면 얼마나 귀하고 자랑스럽겠으며, 그러면 또 얼마나 감사와 기쁨과 만족함이 넘치는 삶이 되겠습니까?

저는 솔직히 시켜주지도 않겠지만 국회의원하라고 해도 안 할 겁니다. 저는 목사라는 이 신분이 가장 자랑스럽고 가장 좋고 가장 행복합니다. 그까짓 세계 권력과 명예와 부에 관심없습니다. 시찰회나 노회나 총회나 이런 기관에서의 무슨 감투 에도 관심 없습니다. 그저 목사라는 신분 하나에게 감사하고 감격하고 기뻐할 따름입니다.

얼마 전 신문사설에서 폴리페서 즉 정치교수들의 정치참여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폴리페서는 정치를 뜻하는 폴리틱스(politics)와 교수를 의미하는 프로페서(professor)의 합성어로서 교수본연의 직업에 충실하지 않고 정치에 뛰어들어 명예를 얻으려는 교수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교수들이 그렇게 세상적인 명예를 좇으려고 한다면 대한민국은 노벨상을 받으려면 아직 멀었다고 개탄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적어도 대학교수라면 교수라는 신분에 자긍심과 자존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까짓 세상 감투하나 씌워준다고 낼름 교수직을 포기하고 정치에 뛰어들고 한다면 결코 학문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학자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감사와 기쁨으로 학문에 열정을 쏟아야 학문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분야에 자긍심을 가지고 감사와 기쁨으로 열정을 쏟을 때에 본인도 행복하고 나라의 미래도 더욱 밝아지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목사 장로 권사 집사로서의 분명한 정체성과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영혼 구원의 이 귀한 사명을 가진 자로서 자존감을 가지고 이 생명의 역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더욱 큰 긍지와 자존감을 가지고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정말 늘 깨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심령을 성령의 은총으로 가득 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고 살고 있는지를 기억하며 정말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과 동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에도 적극 참여함으로 높은 자존감 속에 감사와 기쁨과 은혜로 주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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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화절 설교요약]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는 부활이요
 (요한복음 11장 25-27절)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1. 부활은 슬픔이 기쁨으로, 낙심됨이 감사함으로 변화되게 하여 주셨다.

 


2. "나는 - 이다." 라고 이야기 하신 예수님

나는 부활이다. 나는 생명이다.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라고 이야기 하여 주셨다.

 


3. 예수님의 부활과 같이, 우리도 죽음 가운데 예수님께서 살려주실 것이다.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 2:19)

예수님이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심

우리 몸이 (육체가) 성전이 됨음 알려주심이다.

 


5. 마가복음 5장 38-43절 / 누가복음 7장 11-17절 / 요한복음 11장 43-44절

성경 속에서 죽은 자를 살리신 사건들.

주님은 능력의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셨다.

기적을 통해 죽음의 권세에서 부활하실 수 있음을 보여주셨다.

기적을 통해 우리의 부활되심과 삶의 능력자 되심을 보여주셨다.

 


6. 예수님 자신이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심음 확실히 보여 주셨다.

말씀. 기적. 부활을 통해서 예수님 자신이 우리의 부활 되심을 보여주셨다.

 


7.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죽어도 부활할 수 있음을 확신 하였기에,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였다.

 


8. 죽음은 새로운 출발이며 확신에 찬 희망이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 수 있는 부활의 은총이 있기에

슬퍼하고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

 


9. 예수님은 생명이시다. 영이 산 사람 거듭난 사람만이 믿을 수가 있다.

예수그리스도밖의 사람은 육은 살았어도 영은 죽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이 있다.

죽음은 하나의 관문이다.

새로운 생명으로 가는 길이기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10. 인생의 마지막 순간 굿바이나 씨유어게인의 인사.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빼앗기지 않는 생명을 주셨다.

예수님은 내 생명의 주인 되신다.

주님 내 모든 것 다 드립니다.

 


11. 우리에게 예수님이 질문이 있으시다.

"네가 이것(내가 부활되괴 생명됨을)을 믿느냐" (26절)

관념적이고 머리에만 남아있지 않고 진정한 내 고백이 되느냐, 진정 믿느냐

 


12. 부활절은 부활의 주님을 기념하는 것도 맞지만,

부활의 주님을 믿음을 고백하는 날

나의 주님 나의 부활 나의 생명됨을 고백하고 주님을 믿음을 고백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됨을 믿는 것을 고백.

 


13. 내가 믿음이 있을 때, 내가 믿을 때에

 예수님이 나의 부활되시고 생명되시며 부활의 능력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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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4월 부활절설교 부활은 승리이다.


제목 : 부활의 능력

말씀 : 고전15:12~15
1.예수님은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오늘은 우리 주님께서 세상의 모든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죽음이라는 인류의 마지막 원수, 가장 큰 원수를 물리치시고 살아나셔서 예수님이 생명의 주라는 사실을 명백히 드러내신 날입니다. 그래서 그를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영원한 승리를 안겨 주신 날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둘도 없는 역사적인 날을 맞이하여 부활의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심으로 부활의 생명과 기쁨과 은혜와 능력이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기독교의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죄사함의 은총과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주어진 영원한 새생명의 은총입니다. 그리고 사실 이것만이 참종교의 조건입니다. 제아무리 고상하고 수준높고 지적이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이고 철학적이라 할지라도 생명의 없으면 헛일입니다. 영원한 생명, 이게 있어야 진짜고 이게 있어야 생명이 있는 종교이고, 이 참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지식이나 과학이나 철학이나 도덕도 흉낼 낼 수도 없고, 흉내 내지도 못한 놀랍고 신비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세상의 모든 법칙과 질서와 이성과 과학과 경험과 상식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예수님의 부활을 잘 믿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 12절에서는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여기서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이란 고린도교인 중에 일부의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심지어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물론 다 부활을 믿으시는 줄 믿습니다. 아멘 안 하십니까? 여러분,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면 예수님을 믿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구약성경에 누누이 예언되었던 사실이고 또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일입니다. 눅9:22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그리고 물론 그 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마28:6절을 보십시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예수님은 구약에 예언되어 있던대로, 예수님 당신께서 직접 말씀하신대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이걸 믿으셔야 합니다. 이걸 믿지 못하면 예수님을 안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 믿음의 기초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이게 없으면 제아무리 고상하고 깨끗하고 선하고 능력이 있고 지식이 있어도 빈 쭉정이입니다. 생명이 없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인간의 모든 상식과 경험과 과학의 법칙을 깨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모든 죄와 무지와 어둠과 사망과 사탄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생명의 주님이심을, 그 안에 영원한 승리가 있음을 만천하에 알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께서 모든 어둠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이 날을 맞이하여 더욱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 안에 부활의 주님을 온전히 모셔 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부활의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부활의 주님의 능력과 은혜로서 모든 죄와 어둠과 사망의 권세와 모든 상황과 환경과 약한 것들을 이기고 부활의 생명과 기쁨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부활의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이길 수 없는 사망과 마귀사탄을 비롯한 모든 어둠의 권세를 완전히 깨트려 버리고 승리하신 놀라운 사건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는 사망권세보다 큰 권세가 없습니다. 사망은 모는 것을 삼켜버립니다. 사람은 물로 돈도 권세도 과학도 삼켜버립니다. 지식도 능력도 아름다움도 젊음도 사랑도 모조리 삼켜 버립니다. 제아무리 잘나도 똑똑하고 지식과 권세가 있어도 사망권세 앞에 대항할 자가 없습니다. 제아무리 많은 재산과 권세를 가졌다해도 사망권세가 한번 내리치면 그것으로 끝장입니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힘이 대단합니다. 미국의 무인우주선이 시속 약2만km로 약4개월 동안 비행하여 화성에 착륙하여 사진을 지구로 전송하고 있다니 참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심지어 마음만 먹는다면 복제인간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하니까 인간이 참 대단한 존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인간의 능력이 제아무리 대단해도 생명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입니다. 아무리 수억 수조 Km를 날아가는 우주를 탐사해도 생명과 죽음의 문제는 속수무책입니다. 제 아무리 인간이 기술이 좋고 과학이 발달해도 쌀 한 톨 만들어 낼 수 없고, 하찮은 벌레 한 마리도 만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생명체를 가지고 어떻게 조금 변형시키고 장난을 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생명을 창조할 수도 없고, 죽은 자를 살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도 죽었고, 회교의 창시자 모하메드도 죽음 앞에서는 쪽도 못썼습니다. 그밖에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하려고 했던 알렉산더나 나폴레옹이나 그 어떤 유명한 과학자나 정치가나 사상가나 영웅호걸이나 할 것 없이 죽음 앞에서는 그냥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스스로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사망권세 억눌려 있으실 수 없었던 주님은 사망 권세, 무덤의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께서 사망의 권세, 마귀사탄의 권세를 이기시는 생명의 주가 되심을 만천하에 명백히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생전에도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향하여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죽은 야이로의 딸을 향하여 소녀야 내가 네가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하시자 죽은 소녀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바다와 바람을 꾸짖으며 잔잔하라고 말씀하시자 즉시로 순종했습니다.

이런 모든 사건들은 그 분이 생명의 주가 되심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죽음의 권세, 사탄의 권세, 어둠의 권세, 악의 권세를 이기는 유일한 분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 안에 있을 때만이 우리 모두가 죽음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어둠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완전한 승리의 보장이 되셨습니다. 여러분, 안 그렇습니까? 인류 최대의 적인 죄의 권세, 죽음의 권세, 사탄의 권세, 무덤의 권세를 이기신 분이 우리에게 어떤 승리인들 못 가져다주겠습니까?

여러분, 눅11:21,22절을 보십시오.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여기서 앞의 강한 자는 사탄입니다. 뒤의 더 강한 자는 물론 예수님이십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인류의 범죄이후에 마치 사탄이 우리의 주인처럼 행세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우리 육신과 물질과 시간과 능력을 마치 제 것처럼 여기며 제멋대로 사용하도록 조종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절대 능력을 가지고 계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사탄의 권세를 깨트려 버리고 사탄이 제멋대로 사용하던 것들을 빼앗아 본래의 위치로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지배에서 벗어나 생명의 은총을 누리며 모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우리 모든 것들을 주님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삶으로 원위치된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보다 더 강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은혜와 지혜와 인도하심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는 자가 된 것입니다. 어떤 시험과 유혹이 오든지 고난이나 핍박이나 가난이나 어려움이나 그 밖에 그 어떤 어둠의 권세가 대들든지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롬8:35절을 보십시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그 어떤 것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한 그런 것들이 우리를 절망시키고 굴복시키고 무릎 꿇게 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우리를 지킴으로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세상의 가장 강한 자를 이기신 예수님, 그래서 완전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계신데 우리가 이기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낙심하고 절망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를 물리치신 예수님, 인류의 가장 큰 원수인 사탄과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신 부활의 주님의 능력과 은혜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나는 약하고 부족하지만 부활의 주님께서 힘주시고 은혜주심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모든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혹시 힘든 일이 있더라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혹시 물질이 부족해도, 혹시 육신이 좀 건강치 못해도 혹시 자녀가 뭔가 좀 문제에 직면해 있더라도 낙심하거나 원망 불평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들은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서는 다 해결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주님의 은혜와 능력과 인도하심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활절을 맞이하여 부활의 주님께 대한 견고한 믿음 속에서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부활의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어둠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셨고, 그 부활 사건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안에 완전하고 영원한 승리가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그런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 안에서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힘이 있겠습니까? 얼마나 은혜와 기쁨과 감사가 충만하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예수님 안에 모든 승리가 있는데, 예수님안에 생명의 풍성한 은총이 있는데 우리가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낙심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불평 불만 원망 해야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 안에 분명히 승리가 있는데, 예수님 안에 분명히 생명의 은총이 있는데 우리가 소망과 기쁨과 은혜로 주님과 동행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미 승리자 아닙니까?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소망과 위로과 기쁨과 평안 가운데 살지 못할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부활은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영광의 나라에 대한 보장이요, 소망일 뿐 아니라 오늘 여기서도 얼마든지 승리자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능력과 기쁨과 은혜와 평안과 소망 속에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의 생명의 역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1866년 글래스고우 대학은 아프리카 선교사로 헌신적인 활동을 한 데이빗 리빙스턴 목사님께 법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습니다. 학위를 받기 위하여 강단으로 나오는 리빙스턴 선교사는 갖은 고초로 겉모양은 수척 할대로 수척해져 있었고, 사자에게 물린 왼팔은 제대로 사용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강단에 선 그의 모습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감사와 기쁨으로 힘 있게 연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제가 아프리카에서 지낸 세월을 희생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다만 도저히 갚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빚을 그저 조금이나마 갚으려 한 것뿐입니다. 게다가 미력하나마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저들에게 무언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까?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그걸 어찌 희생이라 하겠습니까?

여러분, 제가 맹수와 질병과 혹독한 기후와 야만인 가운데서 지금까지 지내올 수 있었던 주님께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이 말씀을 생각할 때에 그저 감사할 것 뿐이었습니다. 힘과 위로와 소망과 기쁨이 넘쳤습니다. 나는 다시 아프리카로 갈 것입니다. 거기가 내 삶의 자리이고 거기에 내 인생의 보람과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그는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서 헌신하다가 60세의 나이에 아프리카의 한 오지의 자신의 방에서 기도하다가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 분은 어떻게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도 기쁨과 보람과 위로와 소망가운데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고백한 대로 부활의 주님을 믿었고 그 부활의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힘과 위로로 그리고 주님앞에 설 날에 대한 소망으로 그 모든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와 기쁨과 위로와 소망 가운데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자에게는 분명 이런 위로와 소망이 있습니다.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16:22절에서는 말씀합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수난예고를 들은 제자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두려움과 불안과 걱정과 염려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다시 볼 것이다. 즉 부활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희가 기쁨을 찾을 것이요, 그 기쁨은 그 아무도 그 어떤 것도 빼앗아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비겁하게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갔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성령의 능력을 덧입었을 때 감사와 기쁨으로 제자의 사명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님은 사망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셔서 영원하고 완전한 승리자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그런 승리를 주셨습니다. 죄로부터 건져주시고 사망의 권세, 사탄의 권세, 모든 어둠의 권세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는 부활의 주님의 능력과 은혜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나는 약하고 부족하지만 부활의 주님께서 힘주시고 은혜주심으로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모든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기쁨과 감사와 은혜로 주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함께 하시는 한 우리는 모든 상황 모든 환경 모든 여건 속에서도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며 감사와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소망 속에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오늘 부활절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새롭게 사망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영원한 승리를 주신 예수님을 심령 속에 온전히 모셔 들이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주님을 모셔 들이고 부활의 주님과 늘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부활의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감사와 은혜와 능력과 소망과 위로 가우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런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세상의 모든 죄와 어둠과 모든 약한 것들과 모든 상황과 환경과 조건과 그 밖의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이기고 감사와 기쁨과 은혜로 주님과 동행하는 승리의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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