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 설교] 왜예수를믿어야하나

 

 

 

제 목: 새사람의 새습관

(에베소서 4:22~24)

 

17년도를 마지막 보내는 주일에, 지난해가 성공의 해가 되었든, 실패의 해가 되었든 망각의 바다에 흘려 보내고 87년 새해를 잘 맞이하고 잘 보낼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줄 압니다. 그래서 오늘 "새사람의 새습관"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 니다. 오늘 본문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즉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옛 습관을 좇아 가던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반대로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씀입니다. 즉 옛습관과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이 되어 새 습관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1.새 사람을 입으라

헌 옷을 벗어버리듯 죄악의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입듯이 새 사람을 입으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진리는 낡은 옷 꿰매어 입듯이 사람이 노력으로 수양하고 교양을 쌓아서 새 사람이 되고 구원 받는것이 아니라, 죄악으로 멸망할 옛 사람을 회개함으 로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 새 생명을 얻고 예수그리스도를 옷입듯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면서 예수님을 나의 생명의 구주로 믿어야 합니다.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 새 생명이 되는 것이요, 새 사람이 시작되 는 것입니다.(요 1:12, 3:16, 6:47, 롬10:10등).

말씀은 생명있는 씨앗과 같아서 말씀을 들을 때 믿고 받아 들이면 옥토에 떨어진 씨 같아서 새 생명이 시작되지만, 말씀을 귀등으로 받아 넘기고 믿지 않으면 길바닥에 떨어진 씨 같 아서 새(마귀)가 와서 가로채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이 태어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오늘 처음 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이 되었으면, 과거에 마귀의 유혹을 따라 육신의 욕심대로 행하던 옛 습관을 회개 함으로 벗어 버려야 됩니다. 또 밤송이가 영양분을 잘 빨아 들여 익으면 자연히 껍질이 벗겨지면서 탐스러운 밤톨이 쏟아지는 것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신령한 은혜를 받으면 과거에 썩어져 가는 옛 습관을 벗어버리게 됩니다. 문자 그대로 마귀가 유혹하는대로 행동하는 옛 습관은 인간을 썩게 만들고 파멸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다음에는 말씀을 잘 받아먹고 은혜를 잘 받으며 회개하여 옛 습관을 벗어 버리고 끊어 버려야 합니다. 묵은 해를 보내며 썩고 냄새나는 옛사람의 못된 습관을 벗어 버리기로 결심하고 기 도해야 되겠습니다. 개가 토하였던 것을 다시와서 핥아 먹듯이 예수님을 몇년씩 믿는다고 하면서 믿지 않을 때 가졌던 못된 습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안되겠습니다. 술먹은 습관, 도박, 손장난하는 습관, 춤추던 습관, 음란한 습관, 부부싸움하는 버릇, 바가지 긁는 버 릇, 거짓말하는 버릇등 썩어져가는 더러운 습관을 끊어버리고,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새해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나쁜 습관 한가지 때문에 임금님 진지 그릇같이 귀한 그릇이 될 사람이 강아지 밥그릇처럼 천한 그릇이 되고 축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상에 서도 결단력이 있고 결심이 강한 사람이 성공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김 유신 장군이 젊어서 늘 주색에 빠지는 것을 보고, 하루는 그의 모친이 "치국평천하를 꿈꾸는 사람이 항상 주색에 빠져서야 어찌 큰 뜻을 이룰 수 있겠느냐?"고 눈물로 타이를 때 그는 결심하고 술집에도 기생집에도 안갔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오는 중 말위에서 졸다 보니 어느새 영특한 말이라 전에 잘다니던 기생집 앞에 와서 멈추어 섰습니다. 이때에 눈을 든 김유신 장군은 말에서 내려 "왜 나를 이리로 데려 왔느냐?"고 호통을 치고 긴 칼을 뽑아 그 애마의 목을 쳐서 떨어 뜨리고 뚜벅 뚜벅 걸어왔다는 것입니다. 전에 어떤 목사는 설교도 잘하고 똑똑한데 말버릇이 나빠서 늘 교회에서 배척을 당하다가 어느 낙도 작은 교회에 가서 자기의 입 버릇을 고치려고 밤톨만한 조약돌을 주어서 입에 물고 3년동? 안을 지내고서 말 버릇을 고치고, 환영받는 훌륭한 목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습관을 가졌느냐에 따라 성공자가 될 수도 있고 패배자가 될 수도 있으며 하나님의 축복받을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묵은 해와 더불어 마귀가 유혹하는대로, 육신 의 정욕대로 행하던 썩어져 가는 옛 습관을 벗어 버리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사람으로 새해를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2.새 사람의 새 습관을 가지라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새 사람이 되었으면 새 사람다운 습관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는 내가 산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 하신 말씀대로 옛 사람의 습관은 십자가에 못박고 새 사람의 습관을 가지고 살 아야 되겠습니다.

1)모든 예배에 출석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예배시간마다 갈까 말까 망설이고 유혹받는 정도의 신자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주일날 친구가 등산가자, 낚시가자, 유혹을 받을 정도가 되면 안됩니다. 감히 그런말도 못 꺼내게 엄한 신자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밤 예 배시간에 세계복싱 타이틀 매치를 한다고 해도 탁 꺼버리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용기를 가져야지, 무슨일이 있을때마다 곶감 빼 먹듯 하면 아직 좋은 신자 되기는 늘린것입니다. 특히 일주일의 7분의 1, 그 하루는 주님의 날로 성별해 바쳐야 그 가정, 그 나라에 평강과 복을 주십니다. 이사야서 58장 13절, 14절에서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을 행치 아니하며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부활 후 토요일은 일요일로 바뀌었습니다.) 시편 84편에 보면 주의 제단에 집을 짓고 보는 참새 와 제비도 부러워하면서 "주의 집에 거하는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고 했고 "주의 궁정(교회)에서 한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하고 하면서 성전을 사모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눈물 골짜기로 다니며 슬픔과 고통을 만나도 때를 따라 위로의 샘물을 얻게 하고 은혜의 단비를 내려 주신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주일낮 예배는 물론 밤 예배도 열심히 출석하여 T.V앞에서 시간보내는 사람이 없도록 합시다. 예수님은 그 당시의 종교가 그렇게 부패했는데도 규례를 따라 꼭 꼭 성전에 나아갔다고 했습니다.

2)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의 가장 기초적이면서 중요한 것은 내 수입의 십분의 일을 정확히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사실 십일조를 하나님께 돌려 드리지 못하는 사람의 다른 헌금은 올바른 헌금이라고 할수가 없는 것입니다. 빌리 그래함(Billy Graham)박사가 설교하는 중에 "오늘날 미국 사람의 가장 큰 죄악의 하나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지 않을 때 하나님께 대한 채무 이행을 기피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레위기 27장 30절) 마당히 갚아야 할 빚이다. 우리가 십일조를 하기 전에는 진정한 의미에서 헌금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물론 강도라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간신히 구원 받았으니 십일조를 여생, 구원에 갖다 부치지는 않습니다마는,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 사람은 올바른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 것이며 진정한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순교자라고 불리우는 리차드 윔브랜드(Richard Wurmbrand)라는 사람은 공산치하에서 그 극 심한 고문을 받으며 감옥 생활를 할 때에도 일주일에 빵 한덩어리씩 주는 것과 매일 더러운 국한그릇씩 주는 것을 받아서 십의 하나씩 주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더 약한 형제에게 주며 십일조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맨솔래덤(mentholatum)의 주인공 알버트 하이드(Albert H yde)씨는 십일조를 드리기로 결심한 다음 언손에 바르는 약 맨솔래덤을 발명하여 돈을 많이 벌었는데 하나님이 삽으로 떠 넣어주면 반드시 잊지않고 하나님께 떠서 바치곤 했는데 마침 내 하나님께 가장 많이 바치는 신자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YMCA에 수백만불을(당시 돈 으로)내 놓았고 일본에서 버는 돈만 가지고 일본 선교사업비 전부를 부담할 수가 있었고 그가 87세에 죽을 때는 150만불(현 150억도 넘는 액수)를 선교사업에 내놓았습니다. 십일조로 축복받은 윌리암 콜게이트(William Colagate)는 16세때 집이 너무 가난하여 집을 떠나가 다가 전에 알던 선장노인을 마나서 돈을 벌려고 뉴욕으로 가는데 자기는 비누와 양초 만드는 기술 밖에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선장노인은 무릎꿇고 간절히 기도해 주고나서 충고하기를 "언제인가 뉴욕에서 가장 훌륭한 비누업자(maker)가 생겨날 것이다. 그 사람은 다 른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네가 될 수도 있다. 부디 착한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께 네 마음을 바쳐라. 그리고 네 소유에서 주님의 것을 꼭 돌려 드려라. 또 정량을 속이지 않는 정직한 비누를 만들어라. 그러면 분명히 너는 번영하고 부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해 주었을 때 콜게이트(Colgate)는 말을 명심하고 교회 생활을 철저히 하며 십일조를 잘 드렸습니다. 처음 1달러를 벌었을때 10센트를 드리고, 점점 축복을 받아 정식 사원이 되고 동업자가 되고 결국 자기의 회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10의 5조까지 드리다가 최후에는 모든 것을 다 바쳤고 수억만달러를 주님께 바쳤습니다.

록펠러(Fockefeller)는 어려서 어머니를 도와 생활비를 벌기 시작했는데 첫 월급으로 주금 1불 50센트를 받아 왔을 때 그의 어머니가 그중에 10분의 1조를 하나님께 드리면 잘살게 된 다고 말씀할때 꼭꼭 하기 시작하여 엄청난 재벌이 되었는데, 부디 자녀들에게 십일조를 꼭 가르쳐서 충성된 청지기가 되도록 독자들에게 일러 달라는 부탁을 하더랍니다. 십일조를 안해도 부자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보장을 받지 못하며 언제 날아 갈지도 모릅니 다. 자자 손손 축복받는 재물이 되지 못합니다. 그외에도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은 간증자들이 있는지 수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성경 가운데 다른 곳에는 하나님을 시험하면 무서운 죄가 된다고 했지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한데가 없습니다. 오직 말라기 3장 10절에만 시 험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문을 여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되 바칠때 마다 이럴까 저럴까 시험을 받으면 아직 하나님께서 마음놓고 축복하실 수가 없고 의례히 무슨 수입이나 크건 작건 생길때마다 하나님의 것을 아까운 마음없이 바치도록 습관화 되어야 합니다. 십일조의 습관은 복 받는 습관입니다.

3)하나님과 대화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대화란 누구와 말을 주고 받는 것인데 매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의논하는 것과, 매일 단 두장씩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그속에서 듣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육신의 양식을 꼭 찾아 먹듯이 하나님의 말씀, 영의 양식을 반드시 먹는 습관을 가졍야 합니다. 기도가 아침의 열쇠가 되어야 하고 저녁의 자물쇠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보다 앞서지 말고 무슨 문제나 기도로 해결하도록 해야 됩니다. 다니엘은 하루 세번씩 목숨걸고 기도하는 습관을 가졌기 때문에 항상 승리했습니다. - 아 멘 -

 

블로그 이미지

itworldkorea

IT korea가 세상(world)을 변화시킨다.

,


[주일오후찬양예배설교] 지혜의 유익

 

 


제목 : 지혜의 유익

말씀 : 잠3:21-26

여러분, 세상에서 정말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가장 값진 것이 무엇인가? 말할 것도 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어떤 금은보화보다 귀한 것이 믿음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의 은총,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수 유일한 방법인 이 믿음보다 귀한 것은 없는 것이다. 그 아무 것도 그것보다 우리에게 더 큰 유익을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 아무것도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을 줄 수는 없다. 더 큰 위로와 소망을 줄 수는 없다.

그래서 지난시간에 같이 본바와 같이 15절의 말씀에 보면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지혜 즉 하나님을 알고 믿고 따르는 그 일이 진주를 갖는 것 보다 더 귀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 지혜 하나님을 알고 믿고 따르는 지혜,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지혜는 세상에서 우리가 바라고 사모하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값진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렇다. 정말 이 보다 귀한 것은 없다. 이것과 바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정말 올바른 생각과 올바른 가치관과 올바른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면 정말 하나님을 아는 지혜,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지혜,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의 은총과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그 지혜를 알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올바른 가치관이나 생각을 가지지 못한 정신 이상자들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도 그렇고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이 지혜의 유익과 지혜의 가치를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시간에는 16절에서 지혜는 장수와 부귀를 준다고 하였고, 또 17절에서는 지혜는 즐거움과 평강을 준다고 하였다. 더 나아가서는 18절에서는 지혜는 영생을 준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까 결국 지혜를 얻으면 천하를 얻는 것이다. 장수와 부귀, 즐거움과 평강, 영생 이 이상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이 이상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 지혜를 가진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리고 더나아가서는 그 지혜를 따라 살라야 한다. 공연히 세상 풍조에 이리저리 휩쓸리지 말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가치관이나 목표나 방향을 가지고 살것이 아니다. 우리의 방향, 우리의 가치, 우리의 목표는 하나다. 기준은 오직 지혜이다. 하나님안에 있는 지혜, 하나님의 말씀 그것이다. 그것을 따라 살면 반드시 영과 육이 은혜를 받는 풍성함을 누린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도 역시 계속해서 이 천하보다 귀한 지혜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1.지혜를 얻으려면

오늘 본문에서는 지혜의 유익을 말하기전에 먼저 지혜를 얻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혜를 얻으면 참 평안과 기쁨이 있을 것인데, 영과 육이 풍성함을 누릴 것인데 그렇다면 이러한 지혜는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것인가하는 것을 먼저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1)말씀을 읽고 묵상해야한다.(21절)

오늘 본문 21절 뒷부분에 보면 “이것들로 네 눈 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네 눈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는 것은 말 그대로 항상 우리 눈앞에 말씀이 있게 하라는 이야기다. 눈앞에 성경말씀이 있게 하라는 것은 물론 성경책을 눈앞에 놔두고 구경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읽고 묵상하라는 이야기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지혜를 얻게 된다는 말씀인 것이다.

물론 지극히 당연한 말씀이다. 판사가 되려면 헌법, 민법, 상법, 형사소송법 등등의 법 서적을 부지런히 읽어야한다. 의사가 되려면 의학서적을 눈앞에 놓고 살아야 한다. 영어를 잘하려면 늘 영어책을 가까이 해야한다. 소설을 잘 쓰려면 늘 소설책을 가까이 해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 해야한다. 생명에 관한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생명의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 말할것도 없이 성경은 최대의 지혜서이다. 성경은 유일하게 생명의 구원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책이다. 성경은 구원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는 비결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책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주는 책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 지혜를 얻고, 생명의 비밀을 깨닫게 되고, 구원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는 비결을 알게된다. 그래서 최대의 지혜를 소유한 사람, 생명의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밤낮으로 성경을 묵상하는 사람이 가장 복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12:1-3) 왜? 성경에는 생명에 이르는 길이 있으니까. 성경에는 기쁨과 은혜의 길이 있으니까. 성경에는 진리의 길이 있으니까. 그래서 결국 열매를 맺게 되니까.

그러므로 성경을 읽으라. 묵상하라. 농촌에서 솔직히 농번기에는 읽기가 힘들다. 그러면 겨울철에 1독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한번 시작해 보시라. 그리고 모든 공적인 예배에도 부지런히 참석하라. 그냥 참석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심비에 새기라.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고 적용시키라. 그러면 지혜를 얻는다. 풍성한 삶을 산다. 은혜의 삶을 산다. 반드시 복된 사람이 된다.

2)지혜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

21절 전반절에 보면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키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와 계명을 삶속에서 적용시키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한번 그렇게 해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것이다.

그렇다. 말씀을 올바르게 듣고 읽는 사람은 그 안에서 은혜를 받는다. 도전을 받는다. 새로운 용기가 솟아난다. 그것을 따라서 살게 될 유익을 확실히 알게 된다. 그 길이 얼마나 복된 길인지 분명히 보게 된다. 그래서 새로운 결단이 생긴다. 그래서 실행하게 된다. 실행하면 은혜가 온다. 은혜가 오면 더욱 신이나서 말씀안에서 살게 된다. 그래서 그 말씀을 묵상하고 지키는 자들은 반드시 복있는 사람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계1:3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 정말 복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다. 바로 말씀안에 거하는 사람이다. 말씀을 묵상하며 읽으며 그 안에 거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읽으라. 묵상하라. 그대로 행하라. 그리하여 은혜를 받으라. 그러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삶을 살게 된다.

2.지혜를 얻는 자의 유익

지혜를 얻은 자의 유익은 이미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가 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도 또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왜 자꾸만 강조할까? 물론 먼저 그것이 그만큼 중요하니까 그렇다. 중요하지 않은 사실을 강조할 리가 없다.

그리고 자꾸만 강조하는 이유가 또 하나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말을 잘 안듣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한번 말해서 잘 들으면 두말할 필요가 무엇인가? 한번 말해서 잘 들으면 한번 말하면 그만이다. 우리 자녀들이 한번 말하면 알아서 하면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시행이 안되면 했던 소리 또 하고 또 하고 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도 자꾸만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 그만큼 중요하니까, 중요해서 말을 해도 잘 시행이 안되니까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은 성경에서 강조해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그만큼 중요한 말씀이다. 귀를 기울였으면 이제는 실제로 그 말씀안에서 살자. 그럼 정말 지혜자가 된다. 복있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오늘도 또 강조하고 있다.

1)생명을 얻는다.

이것은 이미 18절에서도 말씀하고 있는 내용이다. 18절 전반절에서는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고 말씀하고 있고 오늘은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라고 또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문자적으로는 좀 다르지만 의미는 똑 같은 말이다.

그러니까 지혜를 얻은 자는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지혜는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하고, 하나님 자신이기도, 예수님을 지칭하기도 한다. 즉 성경을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여 거기서 생명의 말씀을 깨닫고, 구원의 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면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이 역시 너무나 당연한 말씀이 아닌가? 오직 성경안에만 생명의 도가 있다. 진리의 길이 있다. 영생복락의 길이 있다. 구원의 길이 있다. 물론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할때에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구원의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의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말한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3:15) 또 요20:31에서는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성경의 기록 목적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게 하고 믿게하여 그 이름을 힘입어서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가까이 하라. 말씀을 묵상하라. 그러면 지혜를 얻는다. 생명의 은총을 누린다. 영생복락을 누린다. 복의 길이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길도 아니다. 다만 믿고 따르면 된다. 말씀을 하나님을 주님을 가까이 하면 된다.

2)아름다움과 은총을 누린다.

본문 22절 하반절에 보면 “네 목에 장식이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장식이란 「호의, 은총, 은혜, 매력, 아름다움」으로 번역되는 말이다. 그러니까 지혜의 말씀을 늘 가까이하며 그것을 지켜 살면 은혜와 은총과 아름다움속에 살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한 자는 아름다워 진다. 그 말이 아름답다. 그 인격이 향기로워 진다. 그 마음이 넉넉해진다. 정말 그 마음 씀씀이가 아름다워진다. 심령의 평안함을 누린다. 모든 추하고 더럽고 허물많던 모습들이 사라진다. 모든 이기심과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증오와 욕심과 저주가 사라진다.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관용하고 너그러워진다. 왜 진리와 사랑과 은혜의 영이신 성령님이 인도해주시니까. 성령님이 나를 이끌어가니까.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무엇인가? 가장 은혜로운 모습은 무엇인가? 그것은 결코 외양이 아니다. 능력도 아니다. 지식도 아니다. 권세도 아니다. 부귀도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아름다운 마음이다. 맑고 깨끗한 영혼이다. 가식도 미움도 증오도 질투도 거짓도 없는 해맑은 모습이다.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덮어주는 마음이며 그러한 아름다운 마음들이 밖으로 표출될 때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다.

갓난아기가 아름다운 것은 왜인가? 그야말로 어둠의 그림자가 없기 때문이다. 거짓이 없다. 미움도 증오도 없다. 순수하다. 깨끗하다. 그래서 아름답다. 은혜로운 것이다. 그래서 모든 보는 이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사는 자는 바로 이런 은혜를 누린다는 것이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살아가면 성령이 역사하신다. 말씀이 인도하신다. 그래서 우리의 심령속에 찌꺼기를 제거해 주신다. 태워주신다. 모든 세상적인 욕망을 없이 해 주신다. 그러면 그 영혼이 투명해진다. 정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진정한 은혜와 기쁨을 누리게 된다. 이러한 은혜를 누려보지 않으려는가?

3)평안을 누리게 된다.(23-25)

오늘 23, 24절에서는 “네가 네 길을 안연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고 말씀하고 있다. 즉 우리가 말씀안에서 진리안에서 살아갈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는 길을 평탄케 해주시고, 걸려서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밤에 잠자리에 누울때에도 아무 근심걱정이 없어서 평안히 잠잘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다는 말씀이다.

잠을 잘 잘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한 일이다. 잠을 잘 잔다는 것은 근심걱정이 없다는 이야기다. 근심 걱정 불안 공포 미움 증오 욕심이 있으면 잠이 잘 안온다. 잠이 잘 안온다는 것은 무엇인가 평형이 깨졌다는 것이다. 정신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육적인 것이든 무엇인가 평안의 상태에 문제가 생기면 잠이 잘 안오는 것이다. 잠자리에 누워도 별로 편안하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으면 평강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붙들어주신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평강을 주신다. 그래서 그것이 영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혹은 육체적인 것이든 세상의 조건과 무관한 평강을 채워주셔서 모든 근심 걱정 물리쳐 주시고 잠자리도 평안케 해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시 127:2에서는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믿고 따르는 자들을 도우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평강과 하나님의 위로와 하나님의 소망으로 채워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진정한 평안과 위로와 소망을 갖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는 죽음의 순간이나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평안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이다. 오늘 25,26절에 보면 “너는 창졸간의 두려움이나 악인의 멸망이 임할 때나 두려워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는 너의 의지할 자이시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은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말씀이다. 넘어지지 않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뿐만아니라 설령 우리가 넘어질때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켜 주셔서 넘어지 않게 하심으로 평강을 누리고 설령 넘어져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것을 이기게 함으로 평강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순간에도 심지어는 멸망의 순간에도, 급작스런 위기의 순간에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하나님 역사해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기에 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죽음앞에서도 겁 낼 필요도 없고, 환난과 핍박속에서도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네가 정녕 나를 믿고 의지하고 따르기만 한다면 내가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해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순탄하며 순탄한대로 풍파가 있으면 풍파가 있는대로, 살면 사는대로 죽으면 죽는대로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요14:27에서 말씀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빌4:6,7절에서는 말씀하고 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말씀을 정리한다.

여러분, 근심하지 마시라. 염려하지 말라. 두려워하지도 말라. 다만 주님을 믿으라. 말씀을 묵상하라. 기도하라. 맡기라. 다만 주의 율례와 법도와 계명을 사랑하며 그것을 따르라. 그러면 반드시 주님이 역사하신다. 성령님이 인도하신다. 그러면 은혜를 누린다. 평강을 누린다. 생명의 은총을 누린다. 우리 온 성도들은 이러한 사실을 새롭게 기억하며 오직 주의 율례와 법도와 계명을 좇아 살때에 진정 지혜로운자로써 주님의 평강와 위로와 소망을 마음껏 누리며 사시기를 바란다.
 

블로그 이미지

itworldkorea

IT korea가 세상(world)을 변화시킨다.

,

주일오후설교 /  명철을 얻으라고

 

 


제목 : 높임받는 삶을 위하여

말씀 : 잠4:1-9

오늘도 계속되는 지혜의 말씀. 다시금 지혜의 필요성, 그 결과를 강조. 계속되는 지혜의 초청.

어떻게 보면 정말 지루할 정도로 계속해서 강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또 이야기. 어쩌면 이미 다 말씀해 왔던 부분들, 그런데 또 강조. 그렇다면 왜 그렇게 잔소리라도 하듯 계속 반복하고 있는가? 물론 그만큼 중요하니까, 그만큼 좋은 것이니까,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인생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오늘 7절에서도 말씀.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 지니라.” 여러분, 제일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는가? 말그대로 제일이다. 제일이라는 것은 첫째를 말한다. 세상에서 제일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사실 제일은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다. 제일, 그야말로 최상급이다. 최상급은 최고로 좋은 것이다. 그 위에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일은 하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게 제일이다, 저게 제일이다하지만 사실은 제일이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지혜가 제일이라는 것은 지혜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말이다. 세상의 다른 어떤 것도 지혜보다는 못하다는 것이다. 지혜가 세상의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돈보다도 명예보다도 권력보다도 건강보다도 지혜가 더 낫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지혜를 제일로 생각하는가? 과연 우리는 하나님을 제일로 생각하는가? 과연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제일로 생각하는가?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최고의 지혜로 여기는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가? 그래야한다. 실제로 그렇다. 지혜가 제일이다. 하나님이 제일이다. 그 안에 있는 은혜가 제일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세상의 어떤 것과 동행하는 것보다 낫다.

그러므로 7절에서는 다시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너의 얻은 것, 그러니까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그것을 다 바쳐서라도 다 투자해서라도 지혜를 소유하라는 것이다. 이유는 물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지혜가 더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13:44-46)

그러니까 천국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귀해서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그것을 사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천국을 돈주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너의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사들여야 할 만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물론 그 이유야 생명이 천하보다도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잃는 사람은 설령 천하를 얻는다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안에 생명의 길이 있고, 세상에서도 축복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것을 다 팔아서라도 이 생명안에 있는 지혜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 그 무엇보다도 이 지혜를 최고로 여기라. 그리고 그것을 얻으라. 그것을 위하여 투자하라. 그렇다면 이 지혜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이미 얻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더 큰 지혜를 소유하며 더 큰 은혜를 누릴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인가?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점을 말씀하고 있다.

1.지혜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1절)

1절에 보면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훈계를 들으며, 또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고 했을 때 「듣는다」는 것은 그냥 귀로만 듣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기서는 듣는다는 말은 「듣다, 경청하다, 순종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까 지혜의 말씀을 귀로는 듣고, 마음에는 새기고, 그 마음에 새긴바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 이것이 듣는다는 말의 의미인 것이다.

우리말에도 말을 잘 들어라하면 그냥 귀로 듣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을 잘 들어라하면 귀로 잘 듣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라는 말인 것이다.

또 「주의하다」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이 말은 물론 먼저 「귀를 기울이다, 경청하다, 청종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청종이란 말은 말그대로 듣고 순종한다는 뜻이다. 역시 우리말에도 주의하라 그러면 그냥 조심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조심해서 올바른 길로 가라는 말인 것과 같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한 지혜를 얻기 위하여 할 일은 바로 이것이다. 우선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마음에 새겨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마음에 새긴을 것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선은 귀로 주의해서 들어야 하지 않는가? 그래야 마음에 새기든지 말든지 할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냥 듣기만 하면 무얼하는가? 마음에 새기기만 하면 무얼 하는가? 마음에 새겨 졌으면 이제는 그것을 따라 살아가야지.

그러므로 우선을 귀로 들어야한다. 귀로 듣고 마음에 새기자. 새기고 따라가자. 귀로 듣기 위하여 말씀을 가까이 하라. 하나님의 교회를 가까이 하라. 예배 시간을 소중히 여기라. 그러면 참 지혜자가 된다. 은혜충만한 삶을 살게 된다.

2.지혜를 얻어야 한다.(1,5)

1절에서는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고 하였고, 5절에서는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고 말씀하고 있다. 또 7절에서는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얻는다는 말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무엇인가를 획득하라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얻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투자해서 혹은 대가를 지불하고 얻으라는 그런 말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서도 투자가 필요하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도 투자가 필요하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도 투자가 필요하다. 하물며 그 보다 더 귀한 지혜를 얻기 위하여 어찌 투자가 필요하지 않으랴!

요즘 사람들이 노력없이 무엇인가를 얻기 위하여 애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미련한 일이다. 진짜배기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냥 얻어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치없는 것이다. 설령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해도 공짜로 얻어지는 그 순간 사실을 별로 가치가 없어지고 만다. 그냥은 잘 얻어지지도 않거니와 설령 얻는다해도 그것도 다 무의미하다. 무가치하다. 열심히 수고하고 일하고 노력해서 얻은 것이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고, 보람이 있다.

그러므로 지혜를 얻는 것에도 투자가 필요하다. 노력이 필요하다. 애씀이 필요하다. 그래서 5절에서 지혜를 얻으라는 말은 열심히 해서, 무엇인가를 바쳐서 그래서 값진 보물을 소유하라는 그런 말씀인 것이다. 좀전에 말씀드렸던 예수님의 밭에 감추인 보화에서도 말씀하고 있지 않은가?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13:44-46)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의 은혜를 누리기 위하여 투자하자. 은혜로운 삶을 위하여 투자하자. 구원의 은총이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하니까 가만히 앉아서 놀고 먹고 있어도 천국의 은혜를 주신다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구원의 은총을 값없이 주셨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값이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이다.

그러므로 그 크신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값없이 그 구원의 은총을 받았은즉 더욱 그 은혜를 누리기 위하여 그 나라를 위하여 힘쓰고 애쓰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주님의 생명의 역사를 위하여, 그리고 나자신의 은혜 충만한 삶을 위하여 그리하자.

3.지혜를 잊어버리거나 버리지 말라.(5,6절)

5절에 보면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고 하였고, 6절에서는 “지혜를 버리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다. 5절에서 잊지 말라고 했을 때 잊지말라는 말은 「잊다, 모르다, 무시하다, 시들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이다. 그러니까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겼으면 이제는 그것을 늘 묵상하고 적용함으로써 그 말씀들을 잊거나 무시하거나 희미해지거나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들이 언제나 선명하게 남아서 그래서 그 말씀들이 살아있어서 그 말씀들을 따라 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의 일상생활속에서 얼마나 예수님을 생각하며 살았는가? 우리의 삶의 현장속에서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선명하게 기억하며 살았는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잊어버리지 살때가 얼마나 많은가? 일상생활속에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고 교회에 와서야 예수님 생각하고, 말씀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나?

또 심지어는 6절에서는 버리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5절에서는 고의적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무관심하니까 잊어버리고 무시하는 것이므로 잊는 것도 문제긴 문제지만 버린다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버린다는 것은 고의적이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 그럴까? 아마도 나의 삶속에서 무언가 손해를 볼 것 같으면 그렇지 않을까? 일상생활속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했다간 무언가 손해가 올 것 같으면 짐짓 모르는체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적 가치관과 물질을 따라 가는 그런 모습은 없었을까?

그러나 이것도 미련한 일이다. 결국은 손해보는 일이다. 설령 물질적인 면에서 혹은 정신적인 면에서 좀 남는 장사를 했다해도 결국은 그것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속에서 말씀을 잊거나 더더구나 버리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자. 오직 우직하게 말씀을 따르자. 그러면 반드시 은혜가 오고 기쁨이 온다.

4.지혜를 사랑하라.(6,8)

6절에 보면 “그를 사랑하라.”고 하였고, 8절에서는 “그를 품으라.”고 하였다. 물론 여기서 그란 지혜를 말한다. 그러니까 지혜를 사랑하여 그것을 마음속에 꼭 품고 다니라는 것이다. 마치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마음속에 떠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정말 사랑에 빠지면 그 마음속에 온통 그 사랑하는 대상으로 가득차 있지 않은가? 그를 사랑하고 그를 마음에 품으라는 말은 이런 뜻이다.

성경에서 사랑은 자신을 강요하여 그 사랑하는 대상으로 이끌어 가는 자발적인 힘을 말한다. 그러니까 사랑에 완전히 붙잡히게 되면 스스로 자신을 강요하면서 그 사랑하는 대상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해주기 위하여 애쓴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사는가? 우리는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고 사는가? 우리는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차서 자나 깨나 주님을 생각하며 앉으나 서나 예수님으로 우리의 가슴에 가득차 있는가? 얼마나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하여 자신을 강요하며 나아가고 있는가?

5.지혜를 높이라(8)

오늘 8절에보니까 그 곧 지혜를 높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성경에서 높이라는 말씀은 「둑을 쌓아 올리다. 찬양하다. 값을 비싸게 매기다. 존중하다.」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의미를 하나님께 혹은 예수님께 혹은 말씀에게 적용시켜 보면 지혜를 높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금방알 수 있다.

그러니까 먼저는 지혜를 높이높이 쌓아올리라는 것이다. 말씀을 사모해서, 말씀을 존중해서 그래서 자꾸만 말씀을 접하면서 말씀을 우리의 심령에 자꾸만 쌓아올리는 것, 그것이 말씀을 높이는 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다음에는 물론 말 그대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이다. 찬양한다는 것은 훌륭하고 아름답고 가치있는 것을 높이고 칭찬하고 영광을 돌리는 행위이다. 하나님보다 더 훌륭하고 아름답고 선하고 위대한 것이 없으니 최상의 찬양을 돌려야 하고 그것이 곧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다음에 값을 높이 비싸게 매기라는 말을 의미를 생각해보자. 이것은 가장 높게 평가하라는 뜻이다. 이것도 역시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하나님보다 더 높게 평가할 것이 세상에 무엇인가? 그러나 우리의 삶속에서는 정말 하나님을 가장 높게 평가하는가? 그렇다면 그 말에 순종하는가? 가장 높은데, 가장 옳은데, 가장 훌륭한데 왜 따르지 않는가?

존중하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들으라는 것이다. 좇으라는 것이다. 그가 최고니까, 그가 선이니까, 그가 생명이니까 그를 따르라는 것이다.

그렇다. 그가 최고다. 그가 제일이다. 그가 선이다. 그가 진리다. 그가 생명이다. 그러므로 그를 따르라. 제일로 여기라. 정말 그렇게 여기라. 그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기고 청종하라. 그의 법을 잊어 버리지 말라. 버리질랑 더더구나 말라. 모든 것을 투자해서라도 지혜를 얻으라. 모든 것을 잃는 한이 있어도 주님을 얻으라. 다른 어떤 것을 사랑하는 것보다 말씀을 사랑하라. 주님을 사랑하라. 다른 어떤 것을 가슴에 품는 것보다도 주님을 가슴에 품고 살라.

그러면 정녕 살게 된다. 진짜 사는 것 같이 산다.(4) 그가 지키신다.(6절) 언제 어떤 상황속에서도 동행하신다. 인도하신다. 그리하면 영화롭게 한다.(8) 결코 궁색하게 만들지 않는다. 결코 힘들어 지치고 고단하고 슬프게 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관을 머리에 두신다.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신다.(9)

우리 온 성도들은 진실로 지혜를 사랑하며 그와 동행하는 삶을 통하여 이런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란다.

 

 

블로그 이미지

itworldkorea

IT korea가 세상(world)을 변화시킨다.

,